칩4 ‘中 견제’ 힘 모았지만… “헤게모니 선점” 각개전투 [심층기획-美, 對中반도체 견제 1년]

<중> 격변의 '칩4' 반도체 동향

美, 칩스법 시행 통해 ‘리쇼어링’ 성공
3년간 반도체 부문 270조원 투자 유치

동맹·실리 다 챙긴 대만 ‘최대 수혜국’
TSMC 중심으로 생산거점 확장 가속

부활 꿈꾸는 日… 강력한 보조금 무기
세계 1·2위 파운드리업체 모두 유치

韓 ‘AI·전기차’ 초격차 기술로 차별화
삼성·SK하이닉스, HBM 90% 점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8월 ‘반도체 산업육성법’(칩스법)에 서명한 지 1년여가 흐른 현재 세계 반도체 산업은 격동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칩4’(한국·미국·일본·대만 반도체 협의체)는 자국 반도체산업을 부흥시킬 정책에 각각 집중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에서 국익을 최대한 지키면서도 동맹국 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칩4 동맹의 핵심인 미국의 반도체 설계(팹리스),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일본의 반도체 소재·장비, 대만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리쇼어링 성공한 미국

미국은 칩 설계 기술 분야 세계 최강자다. 미국은 칩스법을 통해 자국 기업은 물론 세계 유수 기업의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면서 미 전역을 ‘반도체 벨트’로 바꿔놓고 있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은 칩스법의 골자가 알려진 2020년 5월부터 지금까지 반도체 부문에서 2000억달러(약 270조원) 이상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리쇼어링’(기업의 본국 회귀)으로 평가받는 미국 기업의 자국 내 투자를 포함한 수치인데, 대표적으로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이 꼽힌다. 마이크론은 뉴욕 클레이에 미국 최대 반도체 공장을 짓는 데 200억달러, 아이다호 보이스 새 생산공장에 150억달러를 투자한다. 인텔은 애리조나 신규 반도체 공장에 300억달러를, IBM은 반도체 연구개발을 위해 뉴욕에 10년간 200억달러를 쏟아붓는다.

글로벌 기업의 투자도 쇄도한다. 세계 파운드리 1위인 대만 TSMC는 400억달러를 들여 애리조나에 공장을 짓는다. 삼성전자는 170억달러를 투자해 텍사스주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 향후 미국에 투자를 결정하는 기업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동맹·실리 모두 챙긴 대만

칩4의 최대 수혜자는 대만일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TSMC를 중심으로 생산 거점을 확장하고, 최첨단 미세공정은 자국에서 진행하는 등 동맹과 실리를 모두 챙겼다는 것이다.

대만 언론에 따르면 최근 TSMC는 미세공정의 물리적 한계점으로 불리는 2나노미터(㎚·10억분의 1) 제품을 생산하는 투자 계획을 확정했다.

TSMC의 최첨단 공정 대다수는 대만 내에서 이뤄진다. 2나노 공정은 신주과학단지와 가오슝 공장에서, 3나노와 5나노는 남부과학단지, 7나노는 중부과학단지에서 각각 맡는다.

해외 투자에선 ‘알짜’ 고객사를 유치하겠다는 전략이다.

TSMC는 차량용 반도체를 위해 자동차 업계 선두주자인 독일에도 합작 투자 반도체 공장을 짓는다. 최대 100억유로 규모로 알려진 조인트벤처(JC)에는 독일 자동차 부품업체 보슈, 차량용 반도체 시장 1위인 독일 인피니언 등이 참여한다. 일본에선 이미지센터 세계 1위 소니 공장이 위치한 구마모토현에 2024년 가동을 목표로 신규 공장을 짓고 있다.

◆라피더스 앞세운 일본 반도체의 광폭 행보

일본 반도체는 지난해 11월 출범한 반도체 드림팀 ‘라피더스’를 토대로 부활을 꿈꾼다. 라피더스는 세계 2위 낸드플래시 업체 키옥시아와 도요타, 소니, 덴소 등 기업 8곳이 연합하고 일본 정부가 지원하는 파운드리 기업이다.

현재 일본의 공정 기술력은 40㎚대에 머물러 있지만, 라피더스는 2025년 2㎚ 공정의 반도체를 시험 생산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2021년 세계 최초로 2㎚ 시제품을 생산한 미국 IBM이 핵심 프로세스 기술을 제공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는 강력한 보조금을 내세워 세계 1∼2위 파운드리 업체를 모두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TSMC에 이어 삼성전자는 2025년까지 요코하마시에 차세대 반도체 시험 생산을 위한 연구개발(R&D) 전용 테스트 라인을 건설한다. TSMC는 공장 건설 투자비의 40%인 4760억엔을, 삼성전자는 100억엔을 지원받기로 했다.

산업계는 최근 반도체 미세화 공정이 기술적 한계에 다다르면서 후공정의 중요성이 커졌고, 이에 일본 반도체 산업의 위상도 달라질 수 있다고 내다본다. 미국 안보신기술센터(CSET)에 따르면 일본은 글로벌 반도체 후공정 장비 시장에서 44%라는 높은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국, AI·전기차로 활로 모색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양대산맥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등의 성장에 발맞춰 관련 초격차 기술을 확대하는 생존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최근 격돌하는 분야는 고대역폭메모리(HBM)와 낸드플래시다.

HBM은 챗GPT 등 생성형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기존 메모리인 D램을 여러 층으로 쌓아 대역폭을 D램 대비 128배 넓힌 메모리 솔루션으로, 데이터 처리 용량이 대폭 증가했다.

시장조사업체 욜디벨롭먼트에 따르면 HBM 시장은 지난해 5억200만달러에서 2027년 13억2400만달러로 고속 성장이 예상된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글로벌 시장 점유율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보다 앞서 4세대인 HBM3 양산에 성공한 데 이어 5세대인 HBM3E 개발에 성공해 고객사에게 샘플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내년 HBM3E 대량 양산 체제를 구축과 함께 6세대 HBM4도 준비하겠다는 계획이다.

낸드플래시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저장되는 메모리반도체다. 데이터 저장 공간인 셀을 수직으로 쌓아 올려 처리 용량을 늘리는 ‘적층기술’이 경쟁력의 핵심이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는 AI 사용 증가에 따른 데이터센터향 수요와 전기차·자율주행차 확대 등으로 2025년 낸드 시장 규모가 D램을 넘어선다고 봤다.

SK하이닉스는 최근 321단 4D 낸드 샘플을 공개하며 300단 이상 낸드 개발을 공식화했다. 현존 업계 최고층인 238단 4D 낸드도 SK하이닉스의 제품이다. 삼성전자의 8세대 V낸드는 236단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전자는 생산성과 원가 경쟁에서 앞서나가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9세대 300단 이상 V낸드 칩에 낸드를 두 번에 나눠 제작한 뒤 결합하는 ‘더블스택’ 기술을 적용하는 것이다. 더블스택은 세 개의 낸드를 결합하는 ‘트리플스택’보다 공정 수가 적고 원자재 가격이 낮다. SK하이닉스의 321단 낸드 샘플은 트리플스택 방식이 적용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