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 수준의 기술에만 만족하고, 새 시도는 하지 말걸 하는 후회가 듭니다.”
자율주행 순찰로봇 업체인 뉴빌리티의 이상민 대표가 28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모의법정에서 열린 ‘모빌리티 분야 규제뽀개기 모의재판’에서 이 같은 변론을 남겼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규제뽀개기 행사는 이번이 세 번째다. 5월 1차 행사 때는 바이오 분야, 7월 2차 행사 때는 소상공인들이 겪는 골목 규제가 대상이 됐다.
이날 행사에서 이 대표는 개인정보 보호법을 위반한 기업 사례로 가정해 모의재판에 참여했다. 재판에서는 배달로봇 자율주행 시 행인들의 의도 파악 등을 위해 얼굴 정보를 인공지능(AI)으로 학습했다고 가정할 시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될 수 있는지를 다뤘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2021년 11월 발간한 개인정보보호법령실무교재에서 얼굴은 민감정보에 해당하는 것으로 적시돼 있다.
이 대표는 모의재판 변론에서 “얼굴 영상을 이용해 자율주행 AI로 학습한 것은 개인 식별을 위한 게 아니다”라며 “해외에서는 더 고도화한 알고리즘과 서비스 경험을 만들어내고 있는 순간에도 우리나라는 규제천국이라고 자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모의재판에서는 전기차 폐배터리와 수소선박 관련 규제도 다뤘다. 전기차 폐배터리를 재활용해 에너지저장장치를 생산하는 벤처기업이 부자재 수급 문제로 전기차 폐배터리를 30일 초과 보관하다가 폐기물관리법을 위반한 사안을 가정해 공방을 벌였다.
배터리 전문기업 에임스의 최성훈 대표는 “전 세계의 자동차, 배터리 업계가 폐배터리 시장을 두고 경쟁이 치열한데 우리나라는 이를 쓰레기에나 적용되는 규제를 적용해 기업 활동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호소했다. 법무법인 로백스의 김후곤 대표변호사는 “전기차 폐배터리는 잔존 수명이 70~80%이기 때문에 에너지저장장치(ESS)나 전기자전거 등에 재사용, 재활용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어 “폐배터리 시장은 2040년 600조원으로 폭발적인 성장이 기대된다”며 “유럽연합(EU), 중국, 미국 등이 글로벌 폐배터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는데 국내 기업들은 폐배터리 시장이 꽃피기도 전에 기울어진 운동장 아래로 내몰려 있다”고 지적했다.
수소선박 분야에서는 수소연료전지 격벽 기준 등을 물리적으로 충족할 수 없어 건조검사를 받지 못한 소형 수소선박에 대한 처벌 여부가 쟁점이 됐다. 변론을 맡은 법무법인 태평양의 경기동 변호사는 “글로벌 기준은 소형 수소연료전지 추진선박의 ‘연료전지스텍’과 ‘수소공급장치’만 위험구역으로 설정하고, 여기에 대해서만 방폭 기준을 충족할 것을 요구한다”며 “반면 국내 선박수소연료전지 잠정기준은 수소연료전지가 설치되는 구역 전체를 위험구역으로 설정하고, ‘모든 장비’에 방폭 기준을 적용한다”고 했다.
친환경 소형선박 및 선박용 연료전지 제작 전문기업인 빈센의 이칠환 대표는 전 세계가 수소산업 확대를 위한 정책 지원을 하는데 정작 우리나라는 기준이 없는 ’규제 아닌 규제‘로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연료전지 구역 내 모든 장비에 방폭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안전성을 위해 연료전지구역 주변에 코퍼댐이라는 완충 구역을 설치해야 하는데, 그 기준도 모호한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이영 중기부 장관은 규제뽀개기 행사의 성과가 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이 장관은 “1, 2차에서 다룬 규제의 40%가 관계부처의 협력으로 해결됐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에서 활발히 할 수 있는 사업이라면, 우리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오늘 다룬 세 가지 사안에 대한 (규제) 처리 과정은 향후 공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