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미칼럼] 캠프데이비드의 불청객

미 워싱턴, 트럼프 복귀 우려에도
중국 견제 정책 기조 안 바뀌어
한국 위상 담은 3국 新협력 체제
巨野의 반일 정치는 시대착오적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에 등장하진 않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다. 뉴욕타임스는 “그가 다시 (백악관에) 돌아올 경우 3국 정상 간 캠프데이비드 협약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썼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올해, 내년뿐 아니라 ‘영원히’ 3국 정상회의, 각료급 회의가 정례적으로 열릴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런 변수를 의식해서다.

트럼프 정부가 오랜 동맹·협력 관계를 맺어온 한국과 일본, 유럽 국가에 경제·외교적 압박을 가하며 거칠게 ‘미국 우선주의’를 펼친 경험을 감안하면 우려할 만한 일이다. 외신들은 공화당 주자 가운데 압도적 1위를 달리는 트럼프가 재집권에 성공하면 ‘스케줄 F’로 알려진 행정명령을 근거로 약 5만명의 공무원을 해고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트럼프가 임기 말 자신의 국정 기조에 부정적인 관료를 솎아내기 위해 만든 ‘스케줄 F’는 바이든 정부에서 폐기됐지만 내년 선거 결과에 따라 복원되는 건 시간문제다. 미국 우선주의에 어긋나는 외교 관료들은 해고 0순위다.

황정미 편집인

바이든이 공들인 가치 외교 전선은 흐트러지고 한반도 정세도 출렁일 공산이 크다. 트럼프는 지금도 “내가 김정은과 잘 지낸 덕분에 핵전쟁을 피할 수 있었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현지 전문가들도 대중 정책 기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나 바이든의 ‘중산층 우선주의’ 모두 자국(민)의 경제 이익 확대를 위해 경쟁국 중국을 견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 같은 공화당 주자들이 이번 한·미·일 정상회의 결과를 “명백히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바로 미국이 원하는 결과”라고 호평한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은 단독으로 진행된 첫 3자 정상회의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대니얼 러셀 전 국무부 동아태담당차관보가 뉴욕타임스 기고에 썼듯이 안보 관련 정보 공유조차 꺼렸던 한·일 관계가 윤 대통령 ‘결단’으로 풀리지 않았다면 캠프데이비드 회동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처한 국내 사정은 그러나 훨씬 복잡하고 고질적이다.

“기울어가는 명나라만 쳐다보다 청나라에 침입받고 삼전도 굴욕을 당했던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야.”(정청래) “대한민국이 강대국 대리기사로 전락.”(박찬대) “큰 형님 집에서 열린 ‘3국 서열 확인’ 의형제 결연식.”(서은숙)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들이 쏟아낸 회담 결과에 대한 반응이다. 이재명 대표는 당 주최 토론회에서 “앞으로 연합훈련을 핑계로 자위대가 우리 땅에서 훈련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했다.

21세기에 웬 조선왕조 타령인가 싶겠지만 민주당 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다. 이념적 편향성에 반일 정서를 겨냥하고 있다. 국제 정치의 축이 이동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민주당 지도부는 친중·반일 정치에 갇혀 있는 꼴이다. 트럼프식, 바이든식 미국 우선주의는 시진핑 중국의 전체주의화와 맞물려 미·중 신냉전 흐름을 가속시키고 있다. 여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끊임없는 북한의 미사일·핵 도발은 한·미·일 협력 수위를 역사상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세계적인 외교 전략가 헨리 키신저는 100세가 된 지난 5월 이코노미스트 인터뷰에서 “(국가 지도자가)전략적 관점을 가지려면 자국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고 했다. 과거 어두운 역사, 피해의식에 젖어있으면 냉철한 국익 판단이 어렵다는 것이다. 새 한·미·일 안보협력 체제를 담은 캠프데이비드 원칙·정신·약속은 기술·경제·안보 분야에서 높아진 대한민국 위상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 경제·안보 이익을 최대화하는 것은 현 정부의 몫이다. 수권 정당을 자임하는 야당 지도부가 반일·반정부 구호만 되뇌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지금 우리 인구 절반은 역사적 피해 의식에서 자유로운, 대한민국을 ‘눈 떠보니 선진국’으로 여기는 세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