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에서 운송까지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합산해 전기차 보조금 지급 여부를 판단하는 프랑스판 IRA(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 도입이 가시화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전기차 보조금 지급 기준 개편안을 지난달 28일 공개한 데 이어 지난 25일 의견 수렴까지 마무리했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되지만 6개월간의 유예기간을 거친다. 가뜩이나 미국 정부의 IRA 시행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내 자동차업계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어 걱정스럽다.
가장 큰 변화는 탄소배출량 산출 방식이다. 지금까지는 차량 운행 중 발생하는 탄소배출량만을 따져 친환경차 구매보조금을 줬다. 앞으로는 도로에서 사용되기 전 모든 단계의 탄소량을 합산한다. 강철 등 원재료 생산, 중간가공과 조립, 배터리 생산, 운송 등 차량 생애주기의 탄소배출을 점수화하겠다는 것이다. 한국과 중국처럼 프랑스에서 거리가 멀수록 더욱 불리해진다. 현지 언론 추산에 따르면 같은 알루미늄 1㎏일지라도 생산지에 따라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중국 20㎏, 프랑스 8.6㎏으로 크게 차이가 난다.
원거리 생산 기업을 대상으로 한 차별적인 조항은 상식적으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프랑스 측은 자국과 유럽연합(EU) 내 친환경 사업을 보호·육성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으나 미국 IRA에 맞선 대응이자 보호무역주의 성격이 강하다. 유럽에 비해 전기차 생산 과정에서 화석연료 사용량이 많은 우리 기업에는 큰 진입장벽이 아닐 수 없다. 한국과 유럽에서 생산된 제품에 차별적 대우를 금지한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은 물론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어긋날 수 있는 만큼 정부는 위기의식을 갖고 강력 대응해야 할 것이다.
프랑스 전기차 시장 순위 5위로 유럽 시장 점유율 상승을 노리는 현대차·기아에는 대형 악재다. 지난해 8월 미국이 북미에서 조립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IRA를 시행하면서 북미 전기차 생산시설을 갖추지 못한 현대자동차가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피해가 생겼다. 이번에는 미 의회의 입법 상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초기 대응을 놓친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프랑스의 새 기준은 앞으로 EU 다른 국가로 확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우리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외교적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 체코와 같은 EU 역내에서 전기차 생산 비중을 늘리는 등의 플랜B 전략도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