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의 명물 자유의 여신상을 뒤덮은 주황색 연기, 여행객이 아닌 이재민들로 가득 찬 하와이 마우이섬의 리조트. 전례 없는 진풍경을 만들어낸 초대형 산불이 이제는 지구의 일상이 되고 있다. 기후변화로 늘어나고 강해진 산불이 또다시 기후변화를 가속하는 악순환 탓이다.
2050년까지 30%가 증가할 것이라는 산불은 더 이상 텔레비전 뉴스 속 남의 일이 아니다. 불길이 언제 우리 집 앞마당을 태울지 모른다. 대도시 빌딩숲도 안전하지 못하다. 강풍에 수천㎞를 날아온 산불 연기 속 미세먼지가 눈코입을 덮친다.
지구촌 전체가 산불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다. 예방과 확산 방지가 최선의 산불 대책으로 꼽힌다. 초대형 산불을 신속히 진압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서다. 지난 5월 시작된 캐나다 산불은 1일(현지시간) 기준 아직도 진행 중이고, 그리스 동북부 산불은 발생 11일째인 지난달 29일까지 810㎢를 태워 유럽연합(EU) 관측 사상 최대 피해 규모를 기록했다.
캐나다는 역대 최악의 산불 탓에 올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3∼0.6%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주요 산업인 목재 분야가 산불로 직격탄을 맞았다. 원유·가스 채굴 분야도 작업 중단을 피할 수 없었고, 산불이 휴가철까지 이어지면서 관광산업도 타격을 입었다.
인명 피해도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달 8일 발생한 하와이 산불 사망자는 1일 기준 115명으로 잠정 집계돼 미국에서 105년 만에 발생한 최악의 산불 참사로 기록됐다. 직접적인 인명 피해 외에도 산불은 폐 질환 등에 치명적이다. 세계자연기금(WWF)에 따르면 산불로 인한 심혈관 및 호흡기 질환으로 매년 평균 34만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인도네시아에서도 2015년 261만㏊(헥타르)를 태운 역대 최악의 산불로 연무에 노출된 50만명 이상이 급성 호흡기 질환에 걸렸고, 이 중 약 10만명이 조기 사망했을 것이라는 미 하버드대의 연구 결과가 나온 바 있다. 산불로 인한 대기 오염은 북미 등지에서 2050년까지 두 배로 증가할 것이라는 추정치도 있다.
동물들은 산불로 멸종 위기까지 처했다. 검은 여름 산불로 호주에서는 약 30억 마리의 동물이 죽거나 집을 잃었다. 호주의 대표 동물 코알라도 이때 6만마리 넘게 목숨을 잃었다. 호주 정부는 지난해 2월 코알라를 멸종위기종으로 공식 분류했다.
◆기후변화→산불→기후변화
산불은 더 늘어날 일만 남았다. 기후변화가 산불을 증가시키고, 또 그 산불이 기후변화를 촉진하는 악순환이 이미 시작돼서다.
미 아이다호·컬럼비아대 교수진이 2016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1984년부터 2015년까지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420만㏊의 토지가 미국의 산불 현장에서 추가로 불에 탔다. 기후변화로 고온건조한 날씨가 늘어나지 않았다면 불에 탄 면적은 2분의 1로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기후변화에 따른 폭염·가뭄 장기화는 산불 증가와 직결된다는 게 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산불 발생에는 ‘30-30-30의 법칙’이 있다. 기온 30도, 풍속 시속 30㎞를 넘었을 때 습도가 30% 아래로 떨어지면 산불이 일어나 크게 번질 수 있는 최악의 조건이다. 실제로 캐나다는 산불이 시작된 5월부터 33도가 넘는 폭염에 시달렸다. 2월부터 심각한 가뭄도 이어진 상황이었다.
고온건조한 날씨는 산불의 연료가 되는 초목을 말려버려 가연성을 높인다. 산불의 ‘먹이’가 늘어난다는 뜻이다. 또 산과 숲에 쌓인 눈도 빨리 녹게 해 산불 시기를 앞당긴다.
폭염으로 대류 현상이 활발해져 산불의 자연 발화 원인인 번개도 많이 친다. 백악관 포함 미 13개 부처가 참여하는 ‘국가기후평가’(NCA) 보고서는 번개에 의한 불이 2060년까지 최소 30%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렇게 늘어난 산불은 다시 기후변화에 치명적 영향을 준다.
먼저 가뭄 위험을 높인다. 불에 탄 토양은 물을 덜 흡수하는 경향이 있다. 산불 피해를 본 지역의 토양은 수분 함유량이 적어 쉽게 가뭄 상태로 전락할 수 있다.
지구온난화 주범인 온실가스도 다량 내뿜는다. 2015년 인도네시아 산불은 약 1.6∼1.8Gt(기가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했는데, 이는 그해 인니 총 온실가스 배출량의 70% 이상에 달했다. 2020년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산불은 1억2700만t의 이산화탄소(CO₂)를 배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주 정부가 2003∼2019년 펼친 탄소 저감 정책을 통해 줄인 배출량의 2배 수준이었다. 17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 셈이다.
산불은 숲이 온실가스를 흡수하는 능력도 빼앗는다. WWF에 따르면 1998년 발생한 산불로 손상을 입은 200만㏊의 러시아 숲이 최소 100년 동안 탄소 저장 능력을 잃은 것으로 조사됐다. 늘어나는 산불로 2100년까지 미국의 육상 탄소 저장 용량이 5억t가량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북극권에 있는 캐나다 북부와 러시아 시베리아마저 산불 피해를 입으면서 전 세계 토양 유기탄소 저장량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영구 동토층(녹지 않는 땅)의 해빙 면적도 늘어났다.
◆“산불, 발원지 해결이 최선”
초대형 산불이 ‘뉴노멀(새로운 표준)’이 되면서 산불 대책의 초점은 진화가 아닌 예방·확산 방지에 맞춰지는 추세다. 포르투갈의 경우 2017년에는 전체 산불 관리 예산의 20%만이 예방 관련이었으나 2021년에는 예산의 46%를 예방에 할당했다. 그리스에서도 지난해 산불 예방 예산에 7200만유로(약 1030억원)를 투입했다.
이는 초대형 산불의 규모나 확산 속도를 현재의 소방 인력으로 따라잡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OECD는 2017년 포르투갈·스페인 등 이베리아 반도에서 발생한 산불의 확산 속도가 가용 소방 역량보다 최대 9배 빨랐던 점을 지적하며 “예방 조치를 확대해 산불을 발원지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예방의 핵심은 숲 가꾸기와 연료 관리를 통해 산림의 가연성을 줄이는 것이다.
화재 회복력이 강한 식물종을 산불 고위험 지역에 심고, 화재 취약종은 그 지역에서 제거하는 방식으로 식생을 조정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특히 기후변화 영향으로 가연성 높은 외래종이 증식하고 있는 지역에는 이러한 개입이 필수적이라고 OECD는 분석한다. 포르투갈은 기름기가 많은 유칼립투스 숲의 면적이 1990∼2017년 62%나 늘어났다.
죽은 식물과 바짝 마른 낙엽 등 산불 연료가 쌓이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OECD는 이를 위해 ‘맞불(Prescribed Burns)’, 즉 불을 다스리기 위한 불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여러 국가들이 낙엽과 덤불을 태우고 죽은 나무를 솎아내기 위한 맞불 사용을 산불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 탓에 꺼리고 있으나, 화재 전문가의 적절한 통제가 담보된다면 맞불이 화재 확산을 막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대다수 숲이 사유지인 만큼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도 필요하다. 미국에는 사유지 내의 적극적인 연료 관리를 장려하기 위한 목적으로 농부와 토지 소유자에 주어지는 세금 공제 제도가 있다. 프랑스, 스페인 등에서는 연료가 풍부한 땅에서의 방목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양치기에 인센티브를 주는 정책도 편다. 한국도 사유림 비중이 전체 산림의 67%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