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카프리크(Francafrique)의 시대는 진작에 끝났다.”
올해 3월 아프리카 가봉의 수도 리브르빌을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렇게 외쳤다. ‘프랑카프리크’란 프랑스어로 ‘프랑스’와 ‘아프리크’(아프리카)를 합성한 말이다. 과거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프랑스의 간섭 의지가 완전히 사라졌음을 강조한 표현으로 풀이됐다.
그로부터 5개월여 지나 가봉에서 군사 쿠데타가 발생했다. 군부에 의해 축출된 알리 봉고 온딤바 대통령은 프랑스 정부의 가장 중요한 조력자 중 한 명이었다. 가택연금 상태인 봉고 대통령을 대신해 2020년부터 대통령 경호 부대인 ‘공화국 수비대’를 이끌어 온 브리스 올리귀 은구마 장군이 이른바 과도정부의 지도자가 되었다. 마크롱 대통령 말대로 프랑카프리크는 100% 옛말이 된 걸까.
AFP 통신은 30일(현지시간) 프랑스 정부가 가봉 쿠데타를 맹비난한 사실을 전하며 “아프리카 내 프랑스의 우방 정부들이 잇따라 쿠데타로 몰락하는 것은 프랑스 정부의 좌절을 의미한다”고 보도했다.
1840년대부터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아 온 가봉은 1960년 독립했다. AFP에 따르면 석유 등 지하자원이 풍부한 가봉은 오랫동안 프랑스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다. 현 봉고 대통령 역시 광물과 석유 분야에서 프랑스와 긴밀히 협력해왔다. 가봉에는 아프리카 사헬 지역의 테러조직 근절을 명분삼아 약 500명 규모의 프랑스군이 배치돼 있기도 하다.
이번 가봉 쿠데타로 아프리카의 친불(親佛) 정권들이 줄줄이 무너지는 행태가 또 반복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말리, 부르키나파소 그리고 니제르에서 차례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프랑스와 가깝게 지내 온 지도자들이 쫓겨나고 그 자리를 군부가 대체했다. 이들은 과거 식민지 경험 때문에 앙금처럼 남아 있는 대중의 반불(反佛)감정을 총동원했다. 프랑스를 겨냥해 공개적으로 적대적 입장을 취하며 ‘프랑스가 옛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우리나라를 좌지우지하려 든다’는 식의 선전으로 주민들을 자극했다. AFP는 아프리카 지역 전문가를 인용해 “프랑스를 대표하는 군대와 외교관이 사헬 지역에서 말 그대로 쫓겨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프랑스의 퇴장 그 자체가 아니다. 이 지역에서 프랑스가 물러간 공백이 고스란히 러시아 그리고 중국 세력에 의해 채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니제르 쿠데타의 경우 러시아의 노골적인 옹호를 받았다.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은 최근 마크롱 현 대통령을 비판하며 “쿠데타로 정권이 바뀐 아프리카 국가들 배후에는 서방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러시아, 중국 같은 독재정권이 있다는 점이 명백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