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어떻게 살고 있나요?”는 말에 종종 “망한 절(폐사지)에 놀러 다녀요”라고 답하곤 한다. 원주 거돈사지, 여주 고달사지, 양양 선림원지, 속초 진전사지, 서산 보원사지, 보령 성주사지…. 최근 다녀온 망한 절터다.
망한 절을 좋아한다. 주말에 차를 몰고 아무도 없는 절터에 들어가 깨진 석탑과 덩그러니 놓인 석등을 한참 쳐다본다. 겨울에는 추워서 좋고, 봄은 따듯해서 좋다. 여름의 망한 절터는 세상의 파릇함을 모두 끌어안고 있다. 자연스레 주위 사람들에게 망한 절터를 가보라고 한다.
왜 좋은 걸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대다수 망한 절은 신라 말기나 고려 때 자리 잡았다. 신라·고려 때의 절은 단순한 종교시설이 아니다. 사람들이 모였고 각자의 이야기를 공유했으며, 재물과 권력이 오갔다. 오늘날 백화점과 같은 복합문화시설에 가깝다. 중요한 공간이다 보니 뛰어난 경관, 오가기 좋은 곳에 들어섰다. 세월이 흘러 사람은 흩어져도 풍경은 남는다. 언젠가 원주 거돈사지에 같이 갔던 친구는 가끔 그때 보았던 아름다운 풍광을 이야기한다.
지금 우리는 모든 곳에서 싸우고 있다. 성별과 지역, 학력, 소득, 그 모든 것에서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 ‘나’만이 옳다고 한다. 타인의 생각을 내리누르려고만 하며, 짓밟아버리려고만 한다. 진실(팩트)만 추구한다는 외침 속에는 증오와 멸시만 들어차 있다.
이런 사회는, 공동체는 오래가지 못한다. 0.7까지 떨어진 출산율이 증명한다. 시기, 질투, 증오로 가득 찬 한국 사회에 필요한 건, ‘쉬어감’이지 않을까. 망한 절터에서의 한 시간은 우리의 마음을 쉼표로 채워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이 게재될 때 나는 또 ‘망한 절터’에 갈 것이다. 기다릴 테니 부디 그곳에서 그대를 만나길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