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이하 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전시회 ‘IFA 2023’의 핵심 키워드는 ‘중국’이다. IFA에 참가한 기업 10곳 중 6곳(62%)이 중국 기업(1279개사)이고, 메인 스폰서는 중국을 대표하는 TV 업체 하이센스가 맡았다. 기조연설에는 중국 스마트폰 기업 아너의 조지 자오 최고경영자(CEO), 하이센스의 피셔 유 CEO 등이 나섰다. IFA가 열린 컨벤션센터 ‘메세 베를린’에선 중국어가 독일어, 영어만큼 많이 들렸다.
중국 가전 업체들은 한국 기업을 견제했다. 특히 중국 TV 업체들의 전시장은 세계 TV 시장을 양분한 삼성·LG에 대한 ‘도발’에 가까웠다.
중국의 TV 강자 TCL은 화면 대각선 길이가 100인치 이상인 115형 미니LED TV를 선보였다. 미니LED는 LCD 패널의 백라이트에 사용되는 LED를 마이크로미터(㎛) 수준으로 줄인 기술로 삼성전자의 네오 QLED TV, LG전자의 올레드(OLED) TV와 비교되곤 한다.
TCL 전시장에서 만난 163형 4K 마이크로LED TV ‘시네마월’은 올해 IFA에 전시된 TV 제품 중 가장 컸다. 마이크로LED는 삼성전자의 차기 전략 디스플레이로 꼽힌다.
이번 IFA에서 삼성전자, LG전자는 기존 최신 TV를 홍보하는 데 그쳤다. 이미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 가전·IT 전시회인 ‘CES 2023’에서 신제품을 대거 공개해서다. 그러나 중국 업체들은 보란 듯이 ‘최초 공개’를 앞세워 한껏 고개를 들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업체로선 미·중 갈등으로 내년 CES 참가가 어려워지면서 IFA에 역량을 집중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TV 업체의 자신감은 출하량에서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출하량 기준 TV 시장 점유율에서 TCL(12.4%)과 하이센스(11.7%)는 LG전자(11.3%)를 밀어내고 각각 2,3위에 올랐다. 삼성전자(19.3%)는 1위 자리를 유지했지만 지난해보다 점유율이 1.7%포인트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초대형·프리미엄 리더십’으로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겠다는 구상이다.
LG전자 HE상품기획담당 백선필 상무는 2일 IFA 현장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중국이 출하량에서 앞서는 건 중국 내수 시장 때문이다. 그 분량을 제하면 중국 업체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미미한 수준”이라면서 “한 대를 팔더라도 고가의 제품을 파는 프리미엄 전략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정강일 상무는 1일 IFA 현장 기자간담회에서 TV시장의 ‘거거익선’ 트렌드를 언급하며 “초대형 시장은 계속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고, 그 부분에서 리더십 강화하는 게 삼성전자의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옴디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75인치 이상 초대형 시장, 2500달러 이상 프리미엄 시장에서 각각 36.5%, 61.7%의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다.
양사의 대응 방향은 같았지만 세부 전략은 차이를 보였다.
삼성전자는 현재 98형 TV 라인업을 100인치대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정 상무는 “100인치대 TV의 경우 구축 아파트 승강기론 실어 나르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어 운송·설치에 페인포인트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100인치대 이상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마이크로LED에 대한 연구·개발도 지속할 방침이다. 정 상무는 “미래엔 마이크로LED가 현존 디스플레이의 단점과 제한점 극복하는 솔루션이 될 것”이라며 “빨리 일반 고객들도 충분히 구매할 수 있는 가격대까지 다운시켜 차기 전략 디스플레이로써 활용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 한국에서 출시된 89형 마이크로LED TV의 출고가는 1억3000만원에 달한다.
LG전자는 100인치대 초대형 TV를 출시하기보단 기존 제품의 고부가가치화에 집중하겠다는 구상이다. 백 상무는 “TCL에게 ‘115형 TV를 어디에다 팔 거냐’고 물어보니 ‘중국에 별장이 2000만개 있다’고 답하더라. 100인치대 이상은 결국 중국 내수 겨냥한 제품이라는 것”이라며 “LG전자는 100인치 이상은 글로벌에서 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100인치대는 시기상조라는 뜻이다.
백 상무는 이어 “27인치 패널로 모니터를 만들면 20~30만원 정도지만, 그 패널로 (포터블 스크린인) ‘스탠바이미’를 만들면 100만원에 팔 수 있다”며 “(중국 업체의 미니LED 등) 패널에 휘둘리지 않고, 아이디어 싸움으로 가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