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권 팔아놓고 약관 변경하더니… ‘그린피’ 내라는 골프장

신모(64)씨는 ‘골프장’만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 그는 2018년 회원권이 포함된 충남 당진시 한 리조트를 분양받아 무료로 골프장을 이용해 왔다. 그런데 재작년 1월에 해당 업체가 돌연 골프장 이용료(그린피)로 회당 3만원을 부과하고 예약 가능 획수를 줄이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다. 업체 측은 지난해부터 체육시설법 개정으로 대중형 골프장의 이용권 제공행위가 금지된다며 약관 변경을 밀어붙이고 있다. 유사 회원권을 팔아놓고선 정부 시책을 빌미로 그린피를 부과하거나 우선 이용권을 제한하는 식으로 약관을 변경하려는 것이다.

 

신씨의 소송을 대리했던 진종백 변호사는 골프장의 일방적 약관 변경에 일반인이 대처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진 변호사는 “다행히 1심에서 재판부가 우리 손을 들어주긴 했지만 이렇게 시간과 비용을 들여 소송을 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며 “게다가 모든 회원이 소송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지법 서산지원은 지난달 6일 해당 업체에 그린피 부과를 금지하고 신씨의 이용을 제한할 경우 100만원의 간접강제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업체 측은 항소한 뒤 지난 12일 신씨에게 12개월간 예약 및 내장 정지를 통보했다. 업체의 이미지를 훼손하고 영업을 방해했다는 이유였다. 신씨는 “회원 200여명이 피해를 봤는데 업체 측의 강요로 20여명을 제외하곤 결국 약관 변경 동의서에 서명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현행 체육시설법 제21조는 회원제가 아닌 비회원제 골프장이 회원을 모집하거나 이용 우선권을 제공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그러나 비회원제 골프장 중에서도 면세 혜택을 받는 대중형 골프장이 유사 회원권을 팔아놓고선, 정부의 행정조치를 이유로 그린피를 올리거나 이용권을 보장해 주지 않고 있는 경우가 적잖게 발생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정부는 지난 1999년 골프산업 활성화를 목적으로 대중형 골프장에 대해 세제 혜택을 부과했다. 회원권을 못 파는 대신 세금 감면 혜택을 받는 것인데, 개별소비세는 전액, 토지세는 90% 깎아준다. 그러나 대중형 골프장이 유사 회원권을 파는 사례는 심심치 않다. 2020년 국세청 조사 결과 당시 전국 대중형 골프장 약 300곳 가운데 10% 수준인 33곳에서 유사 회원권 판매와 같은 편법 영업이 적발됐다. 이후 정부 차원의 조사는 없었다.

 

문제는 대중형 골프장이 유사 회원권을 판매한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 3월 대구지법 상주지원은 재작년 골프장 이용권이 포함된 택지를 구입한 이들에게 일방적으로 그린피를 인상하고 이용권을 보장하지 않은 업체에 대해 택지 매수자 40명에게 적게는 1200만원에서 많게는 56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한 바 있다. 

 

서천범 한국레저산업연구소장은 “최근 충남에서도 대중형 골프장이 유사 회원권을 팔아놓고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팬데믹 기간 이용자가 많아지니 약관을 일방적으로 바꾼 사례가 있었다”며 “지난 4월 개장한 경남 밀양시의 한 대중형 골프장은 리조트 분양권으로 사실상 회원을 모집해 놓고 이용을 보장해 주지 않았는데, 회원들에게 받은 분양금으로 남한강 일대에 또 골프장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 소장은 관련 법인 체육시설법 내 유사 회원권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규정하고 대대적인 단속을 벌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세금도 감면받으면서 유사 회원권 판매로 소비자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처음 골프장을 운영할 때는 소비자들의 돈을 끌어다가 쓰고 이제 와서 법을 핑계로 기존 혜택을 줄 수 없다고 오리발 내미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사진=연합뉴스

소관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유사 사례들을 확인하고 있는 단계라고 밝혔다. 문체부 관계자는 “대중형 골프장은 회원 모집이 불가하기 때문에 유사 회원권과 관련한 정의가 없다”면서도 “일방적 약관 변경으로 피해를 보는 경우 약관법이나 소비자기본법에 따라 구제받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