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가 어제 공공기관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감사 결과 발표를 통해 보조금 중복지원 등을 적발해 임원 2명의 해임, 직원 6명 징계, 7건에 대한 경고·주의 조치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민주화 운동 정신을 국가적으로 계승 발전시킨다는 설립 취지에서 벗어난 예산 부당 집행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사업회가 지난 6월 윤석열 대통령 퇴진 구호를 내건 행사를 후원하려 한 것이 단순한 일회성 해프닝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서류 조작을 비롯한 회계 부정과 부당 출장 처리 등 모럴 해저드도 심각했다. 이름에 걸맞지 않은 일들이 버젓이 벌어졌다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사업회로부터 지원금을 받은 민간단체 행사에서 나온 발언들을 보면 반정부 시위나 다름없어 충격적이다. “윤석열정부는 민주화 운동을 왜곡하고 폄훼, 한반도를 전쟁의 위험에 몰아넣고”, “검찰 독재를 부수는 투쟁의 선봉에 나서길”, “구걸외교 친일행각 윤석열은 퇴진하라” 등의 발언이 수두룩하다. 사업회의 학술대회 토론집에 ‘윤석열정부에서 다시 판을 치고 있는 난신들’이라는 표현이 실리는 등 연구보고서와 자료집에서 부적절한 내용도 다수 발견됐다. 노란봉투법 제정 반대나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 운동 등 더불어민주당의 목소리와 보조를 맞춘 이들을 ‘2022년 한국민주주의대상’ 수상자로 선정·시상했다는 발표는 헛웃음을 자아낸다.
4·19혁명과 6·10항쟁 등 민주화 운동을 기념하고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2001년 설립된 사업회는 정부 국고보조금에 전적으로 의존해 운영되는 공공기관이다. 올해만 하더라도 정부로부터 173억9300만원을 지원받는다. 어느 곳보다 예산 운영이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할 곳이다. 그런데 조직·인력 관리가 부적절했을 뿐만 아니라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14개 단체에 50차례에 걸쳐 2억6000만원을 중복해서 부당 지원하는 등 국고보조금을 쌈짓돈처럼 관리했다.
사업회 행태를 보면 민주화 운동을 특정 세력의 전유물쯤으로 여긴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민주화 운동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향유하는 우리 모두가 기려야 할 일이다. 사업회는 민주화 세력이 기득권화한 것처럼 초심을 잃은 걸 반성하고 명실공히 민주화 운동 기념 단체로서 거듭나야 할 것이다. 그것이 민주화 운동에 헌신하거나 그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두 달 전 이재오 전 국회의원이 새 이사장에 취임해 개혁의 기치를 내건 만큼 사업회의 새로운 출발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