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잦아들었던 인플레이션 압력이 다시 커지고 있다. 어제 통계청에 따르면 8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3.4% 상승해 3개월 만에 3%대로 올라섰다. 상승 폭은 지난 4월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폭염·폭우 등 이상기후로 농수산물 값이 5.4%나 급등한 데다 국제유가 인상까지 겹친 탓이다. 작년 상반기 국제유가 급등 여파로 물가상승률이 6월과 7월 2%대로 떨어졌는데 작년 8월에는 석유류 가격이 급락해 기저효과가 사라진 것이다.
추석을 앞두고 밥상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걱정이 크다. 시금치가 한 달 새 60%가량 폭등했고 배추·무·수박·토마토·사과 등도 12.1∼42.4% 뛰었다. 생활물가와 신선식품 물가는 상승률이 각각 3.9%, 5.6%에 달한다.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일시적 요인들이 완화하면서 10월 이후부터 물가가 다시 안정될 것”이라고 했다. 안이한 인식이다. 산유국의 감산 여파로 휘발유·경유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고 추석 성수기, 버스·지하철 등 공공요금 인상, 원유(原乳) 가격 상승에 따른 식품값 도미노 인상, 원화 약세 등 악재가 즐비하다. 물가 불안은 소비심리를 위축시키고 경기 반등의 불씨마저 꺼트릴 수 있다.
가뜩이나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6%에 그쳤다. 민간과 정부 소비가 모두 쪼그라들었는데 수출 감소 폭(0.9%)이 수입(3.7%)보다 적어 간신히 역성장을 면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정부 목표치인 1.4% 성장도 힘들다는 비관론이 고개를 든다. 사정이 이러니 물가를 잡자고 함부로 금리를 올리기 어렵고 경기를 떠받치기 위해 재정을 풀기도 힘들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구조개혁 없이 재정·통화 등 단기정책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나라가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했다.
정교한 정책조합이 절실한 때다. 정부는 유류세 인하 연장, 사과·배 등 추석 성수품 공급 확대, 농·축·수산물 할인 지원 등 비상 대책을 내놓았지만 더 세심한 대책이 필요하다. 유가, 기후변화 등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변수이기는 하지만 이를 틈탄 담합이나 편법 가격 인상에는 강력히 대응하고 실효성 있는 완충 장치도 더 준비해야 한다. 파급력이 큰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 인상은 시기를 분산하고 오름폭도 탄력적으로 조절하기 바란다. 긴 안목에서 과감한 규제 완화와 유통 구조 개혁을 통해 경쟁 촉진과 제품 가격 인하를 유도하는 것도 소홀히 해선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