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신호가 왜 이리 짧아?”… 보행자 신호 시간 늘어날 수 있을까 [이슈+]

6일 오전 11시 서울 영등포구의 한 사거리 횡단보도. 70대는 족히 넘어보이는 여성은 초록불이 들어오자마자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45m 남짓한 횡단보도의 보행신호는 약 37.5초. 여성은 1초를 남겨두고서야 횡단보도를 다 건널 수 있었다. 우회전을 기다리던 차량들은 신호가 바뀌자마자 횡단보도를 지나쳐갔다. 여성은 체력에 비해 조금 빠른 속도로 걸었는지 횡단보도를 건넌 뒤 잠깐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들어 몸을 풀었다. 노약자에겐 신호가 바뀌자마자 건너도 빠듯한 시간이었던 셈이다.

 

일부 횡단보도의 보행신호가 노인과 어린이, 장애인 등 교통약자가 건너기에 짧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온라인엔 “노약자가 횡단보도를 다 건너지 못했는데 빨간 불로 바뀌었다” 등의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올해 초엔 횡단보도를 천천히 건너고 있던 노인을 업고 횡단보도를 건넌 시민의 이야기가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모두 횡단보도 시간이 짧아 생긴 일이다. 보행자의 보행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gettyimgesbank 제공

6일 국회에 따르면,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은 이날 교통약자의 보행시간에 대한 실태조사를 연 1회 이상 실시하도록 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강 의원은 개정안 발의이유에서 “노약자, 임산부 및 장애인 등 교통약자는 보행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현행 보행신호 시간은 이들이 안전하게 횡단하는데 충분하지 않다는 의견이 제기됐다”며 “어린이, 노인 및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보행시간에 대한 실태조사를 연 1회 이상 실시하고, 그 결과를 신호기 설치·운영 및 관리에 반영하도록 함으로써 교통약자의 보행 편의 및 교통안전을 확보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횡단보도의 보행시간은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에 따라 관리된다. 경찰청의 ‘교통신호기 설치·운영 업무 편람’에 따르면 보행신호 시간을 정할 때 보행자의 보행속도를 1㎧로 계산한다. 보행약자의 통행이 많은 경우 0.7㎧를 적용한다.

 

국토교통부가 올해 1월 발간한 ‘국가 보행교통 실태조사’에 따르면 보행속도를 1㎧로 적용할 경우 대로와 생활도로 모두 녹색신호 시간이 적정했다. 문제는 보행약자였다. 0.7㎧의 기준을 적용하면 생활도로 상업지역과 대로는 녹색신호 시간이 다소 부족했다. 제 시간에 건너기 쉽지 않다는 뜻이다.

 

사진=연합뉴스

실생활에서도 신호가 짧아 횡단보도를 건널 때 고생하는 보행약자들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직장인 홍모(35)씨는 “어르신들이 횡단보도를 건널 때 ‘아슬아슬하다’는 생각을 한 게 한 두 번이 아니다”라며 “보행약자를 배려해 신호가 조금만 더 길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직장인 이모(29)씨 역시 “다리를 다쳐 반깁스를 했을 때 횡단보도 시간이 짧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며 “몸은 안 따라주는데 시간은 빨리 줄어드니 괜히 조바심이 났다”고 밝혔다.

 

올해 초엔 걸음이 불편한 노인을 업고 건너는 시민의 모습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노인은 경기 고양시 능곡역 부근의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는데, 도중에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었다. 이때 청년이 노인에게 다가간 뒤 노인을 업고 길을 건넜다. 이를 언론사에 제보한 시민은 “청년의 작지만 훈훈한 선행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MBC 방송화면 캡처

지자체 중엔 보행약자를 위해 보행시간을 늘린 곳도 있다. 광주 동구는 지난달 8일 노인이나 어린이, 장애인 등 보행 약자의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관내 횡단보도 11곳의 보행신호 시간을 3~6초 가량 연장했다고 밝혔다. 보행약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다 중간에 신호가 바뀌어 도로 가운데 갇히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줄여보고자 하는 취지로 기획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