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골 복원해 신원 찾아 장례 치른 대학생… 울산해경의 5달 추적기 들어보니

지난 4월17일 새벽 5시54분 울산 울주군 고리원전 동방 16.66㎞ 해상. 선망(그물) 조업을 하던 어선의 한 선원이 닻을 내리다 바다에 떠있는 시신을 발견했다. 해경이 수습한 시신의 모습은 참담했다. 얼굴은 백골. 검정색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몸은 밀랍처럼 됐고(시랍화), 양 손발이 없었다. 지문을 확인할 수 없었다는 의미다. 신분을 확인할 물건도 발견되지 않았다. 성별만 남성인 것이 확인됐다. 울산 앞바다에서 발견된 신원 미상의 백골 시신을 해경이 5개월간 추적, 신원을 밝혀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바다에서 발견한, 부패가 심한 시신의 신원과 사인 등을 파악해 미제를 마무리한 사례는 이례적이다. 

 

지난 4월 울산 앞바다에서 해경이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 울산해양경찰서 제공

6일 울산해경에 따르면 신원 미상의 시신은 전라도에 거주하는 대학교 1학년 A(19)씨. 올 2월 스스로 바다로 뛰어들어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된다. 올 2월초 그의 거주지역 한 폐쇄회로(CC)TV에 바다로 추락하는 모습이 남아있어서다. 

 

울산해경은 이 백골 시신을 2월쯤 울산 앞바다에서 실종된 인도네시아 선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확한 신원 확인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과 치아감정, 유전자 검사를 의뢰했다. 2018년쯤 도입된 얼굴 복원까지 함께 의뢰했다.

 

부검결과, 사인은 불명. 부패가 너무 심한 탓이었다. 사망시기는 2∼3개월 전쯤으로 추정됐다. 치아감정에선 유의미한 결과가 나왔다. 시신의 나이는 ‘만17∼19세’. 사랑니 발치가 덜 됐고, 닳은 치아가 없어서다. 해경이 생각했던 인도네시아 선원은 30대. 나이가 맞지 않았다. 수사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변사자 수배전단.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복원한 얼굴도 포함됐다. 울산해양경찰서 제공

‘2∼3개월 전쯤 실종된 만17∼19세 남성’ 찾기에 나섰다. 시신이 발견된 해안가를 탐문하고, 전국 해경과 울산, 경북, 부산, 경남 창원·통영 지역 경찰서에 실종자를 찾는데 협조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6월 초순쯤, 백골 시신 얼굴 복원 결과가 나왔다. 머리뼈를 CT로 촬영해 분석한 후, 그동안 축적한 한국인 얼굴뼈 데이터와 대조해 눈·코·입의 위치와 모양 등을 예측하는 것이다. 복원한 얼굴은 몽타주로 제작됐다. 이번엔 몽타주와 함께 영남권 해경과 경찰에 공문을 보냈다. 울산해경 형사3팀 김훈재 경사는 “만17∼19세로 추정됐기 때문에 해당 지역 고등학교에도 공문과 몽타주를 보냈다”고 전했다.

 

탐문과 전화, 조사, 실종자 유전자 비교 등이 계속됐다. 그러던 지난 달 24일, 국과수에서 연락이 왔다. “백골 시신 얼굴복원 몽타주와 생김새도 비슷하고, 유전자까지 일치하는 실종자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시신이 누구인지 알게된 것이다. 

 

지난 달 말쯤 울산해경에서 이뤄진 유족조사에서 A씨의 아버지는 “내가 사준 속옷 브랜드가 맞다. 지금까지 (시신이) 안 나와서 ‘혹시 살아있을까’ 하고 그렇게 기대를 했는데…”라며 통곡했다. 유족들은 아들이 실종된 뒤에야 A씨가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울산시 장례시설인 하늘공원 무연고자 봉안실에 있던 A씨의 유골은 ‘성명불상’ 대신 자신의 이름을 걸고 제대로된 장례를 치르게 됐다.

 

전라도 바다에 빠진 A씨가 어쩌다 울산 앞바다까지 오게 됐을까. 김 경사는 “남해 쪽은 섬이 많아 드물긴 하지만, 경상도에서 빠진 사람이 전라도에서 발견되는 일도, 경상도에서 빠진 사람이 일본에서 발견되는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서종석 울산해경 형사3팀장은 “변사자가 신원불명인, 미제사건으로 남기지 않으려 많은 노력을 쏟았다”며 “얼굴 복원 등 발전된 기술 덕분에 변사자의 이름과 가족을 찾아줄 수 있게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