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의 전초전이라 불리는 9월 모의평가가 6일 뚜껑을 열었다. 정부는 그간 ‘킬러문항 없이 어떻게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9월 모평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해왔는데, 실제 이날 시험은 눈에 띄는 킬러문항은 없고 변별력 확보에도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EBS·입시업체 모두 “킬러 문항 없다”
이번 9월 모평의 최대 관심사는 킬러문항 출제 여부였다. 앞서 교육부는 킬러문항을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으로, 사교육에서 문제 풀이 기술을 익히고 반복적으로 훈련한 학생들에게 유리한 문항’으로 정의했다. 일각에서는 정의가 모호하다는 지적과 함께 킬러문항 배제는 초고난도 문제가 사라진다는 의미인 만큼 ‘쉬운 수능’이 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왔다.
우려와 달리 이날 EBS와 입시업체들은 일제히 ‘킬러문항은 없다’고 진단했다. 다수의 수험생이 손도 못 댈 정도로 어렵게 꼬아 낸 문제는 없고, 고난도 문항들도 EBS와 연계되는 등 수험생들에게 아주 낯선 문항은 없었다는 것이다. 교육당국은 논란을 의식한 듯 이날 EBS 브리핑 자료를 통해 영역별 고난도 문항이 어떻게 공교육 교육과정과 연계됐는지도 상세하게 설명했다.
예를 들어 과학·기술 지문이 나온 국어 11번(독서)은 종로학원에서 표본조사 정답률이 39%에 그친다고 분석하는 등 까다로운 문제로 꼽혔지만, 지문 자체는 EBS 수능교재와 연계됐고, 지문에 충분한 정보가 제공돼 지문 독해만으로도 문항을 해결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존 시험에 출제됐던 킬러문항은 생소한 소재나 전문적인 배경지식이 있어야 풀 수 있도록 출제해 변별력을 확보했다면, 이번 시험에는 지문을 끝까지 읽고 제시된 정보를 파악해야 풀 수 있는 문제, 까다로운 선택지 등이 변별력 확보에 활용됐다는 것이다.
EBS 수학 강사인 심주석 교사(인천 하늘고)는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출제경향 브리핑에서 “지난해 수능 미적분 30번은 지수함수에 삼각함수를 합성시키는 등 교과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을 가지고 해석해야 했다. 미분법 1∼3단원을 전부 이해해야 했다”며 “이번 모평에서도 미적분 30번이 어려운 문제지만 미분법 2단원에 집중됐다. 그 내용을 이해하고 끝까지 푼다면 풀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존에는 전통적으로 고난도 문항이 출제되는 22·30번은 미리 포기하고 없는 문제라 생각하는 학생도 많았는데 이번 모평 고난도 문제들은 교육과정을 충분히 학습했다면 도전할 수 있다”며 “예전처럼 다수의 학생이 ‘버리는’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중상위권 변별력 확보…최상위권은 우려
또 다른 숙제였던 변별력도 어느 정도 확보됐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이날 EBS가 ‘EBSi’ 홈페이지에 공개한 9월 모평 예상 등급컷(오후 7시 기준)에 따르면 만점자 표준점수(표준점수 최고점)는 국어 143점, 수학 144점이다. 지난해 수능보다 국어는 9점 오르고 수학은 1점 떨어진 점수다. 표준점수는 수험생의 원점수가 평균 성적과 얼마나 차이 나는지 보여주는 점수로, 시험이 어려우면 최고점이 올라간다. 통상 최고점이 145점 이상이면 ‘불시험’, 135점 이하면 ‘물시험’으로 평가돼 143점·144점은 비교적 적정 난이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금 예상 점수대로라면 국어와 수학의 표준점수 최고점 격차 문제도 해결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수능은 두 과목의 최고점이 11점(국어 134점, 수학 145점) 벌어져 수학 만점자가 국어 만점자보다 11점이나 유리해 논란이 됐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최고점 격차를 줄이겠다고 밝혔지만 6월 모평에서는 15점(국어 136점, 수학 151점)으로 더 벌어졌는데, 이번엔 1점으로 크게 줄어든 것이다.
다만 초고난도 문제가 사라져 최상위권의 변별력 확보는 숙제로 남았다. 종로학원은 “수학의 경우 중상위권 변별력은 유지됐지만 고난도 문제가 쉬워져 최상위권 변별력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며 ”최상위권 만점자, 동점자가 늘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밖에 메가스터디와 이투스, 유웨이 등 입시업체 대부분 “수학 초고난도 문항이 없다”며 비슷한 평가를 내놨다. 영어도 1등급 근처나 2·3등급 학생은 6월 모평보다 어렵게 느꼈겠지만, 상위권만 풀 수 있는 초고난도 문항은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바뀐 출제 방향·난도 측정 ‘수능 리허설’
6일 시행된 대학수학능력시험 9월 모의평가는 교육부가 교육과정을 벗어난 이른바 ‘킬러문항’을 수능에서 없애겠다는 방침을 밝힌 이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주관으로 처음 실시된 전국 시험이다.
평가원 주관 모의평가는 11월 본수능과 유형이 비슷해 수험생들이 수능의 난이도와 출제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 되어 왔다. 9월 모의평가는 수능과 시험의 성격, 문항 수, 출제 영역이 동일하다. 평가원은 매해 6월과 9월 두 차례 모의평가를 시행한 뒤 채점 결과 분석을 통해 실제 수능 난도와 문항 등을 조정한다.
다만 올해의 경우 수능 모의평가의 의미가 달라졌다. 지난 6월 모의평가에서 공교육이 다루기 어려운 킬러문항이 출제됐다는 교육부의 발표로 인해 수험생 입장에선 6월 모의평가를 통해 수능을 점쳐볼 수 없게 된 것이다. 결국 킬러문항을 배제한 9월 모의평가만이 11월 수능의 출제 방향 및 세부 문항의 난도 등을 탐색해 볼 유일한 기회였던 셈이다.
이번 9월 모의평가 지원자는 47만5825명으로 지난해 9월 모평 때보다 1만3545명 줄었다. 재학생은 같은 기간 2만5671명 감소한 37만1448명(78.1%)이었다. 반면 재수생 등 졸업생은 전년보다 1만2126명 증가한 10만4377명(21.9%)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졸업생 비중은 2011학년도 대입 이후 13년 만에 가장 높은 것이다. 2024학년도 대입부터 킬러문항이 배제되면서 수능이 쉬워질 것이라는 기대가 작용해 반수 등에 도전하는 졸업생이 대거 9월 모평에 응시했기 때문이라는 게 교육계 분석이다.
이날 9월 모평 각 영역 시험이 끝난 뒤에는 EBS 수능 강의·교재 강사진의 모평 분석이 발표됐다. 강사진은 국어, 수학, 영어 영역 시험 종료 직후 정부세종청사에서 킬러 문항 배제 여부, 영역별 출제 경향, 주요 문항 등에 대해 설명했다.
EBS가 평가원 주관 모의평가 당일 언론브리핑을 열고 분석 결과를 내놓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는 수험생들이 사교육업체 분석에 의존하지 않고 공적인 측면의 분석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한 것이라며 내년에도 6·9월 모평 때 강사진 브리핑을 열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평가원 주관 모의평가 때마다 출제 경향과 난이도 관련 분석 자료를 내놨던 일부 대형 입시업체는 이날 별다른 분석 자료를 내지 않았다. 대성학원이 대표적이다. 대성학원이 6·9월 모의평가 분석 자료를 내지 않은 것은 1965년 개원 이래 처음이다. 진학사 또한 당일 분석 자료를 발표하지 않았다. 이들 업체는 7일 이번 모평 분석 자료를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