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유명 소아정신과 병원의 경우 진료를 받기 위해선 예약 후 최소 1년을 대기해야 한다. 인근 다른 병원도 길게는 수개월까지 대기해야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초등학교 자녀가 우울 증세를 보여 최근 한 소아정신과 병원을 찾은 A씨는 “예약을 하더라도 방과 후 시간에 병원을 가면 학생들이 너무 많아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며 “정신과를 찾는 청소년들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이동우 인제대 의과대학 교수(정신건강의학)는 “주로 성인 조현병 환자들로 채워져 있던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최근 들어 청소년들이 입소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생명의전화로 상담을 하는 초등학생도 많이 늘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치열한 입시 경쟁과 코로나19 유행 장기화에 따른 단절 등으로 청소년들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통계 결과들이 잇따르고 있다. 우울증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아동·청소년은 최근 5년 새 1.6배 늘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초·중·고교생도 지난 5년간 800명을 넘은 것으로 조사됐다.
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이 교육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6∼14세 우울증 진료 인원은 2018년 2만3347명에서 2022년 3만7386명으로 1.6배(60.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초등학생에 해당하는 6∼11세의 경우 2018년 1849명에서 2022년 3541명으로 우울증 진료 인원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12∼14세는 5893명에서 9257명으로, 15∼17세는 1만5605명에서 2만4588명으로 각각 1.6배가량 증가했다.
김 의원은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해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재택수업을 진행하던 학교들이 전면 등교를 재개하면서, 학교생활 부적응 문제로 우울이나 불안 등을 겪는 아동·청소년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봤다. 김 의원은 “학교와 지역사회가 아이들의 정신건강을 집중 관리할 수 있는 인력과 인프라를 확충하고, 상담과 치료·관리를 연계하는 프로그램 등 종합적인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초·중·고교생도 더 늘었다. 자료에 따르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동·청소년은 2018년 144명에서 지난해 193명으로 크게 증가했으며 최근 5년간 모두 822명(연평균 164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초등학생의 경우 2018년 3명에서 지난해 11명으로 4배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중학생은 52명에서 64명, 고등학생은 89명에서 118명으로 모든 학교급에서 증가했다.
자살 원인별로는 가족 갈등이나 부모의 학대 등과 관련한 가정문제가 248건으로 가장 많았고, 학업·진로문제(167명)가 두 번째로 많았다. 이어 우울증, 조울, 공황장애, 조현병 등 정신질환 진단과 관련한 정신과적 문제가 161명, 교우관계나 이성관계 등으로 인한 대인관계 문제가 134건 등의 순이었다.
박수진 성북구자살예방센터 부센터장은 “실제 현장에서 보면 전체 자살 시도자 중 청소년들이 10% 정도에 달할 정도로 과거에 비해 많이 늘었다는 것을 체감한다”고 말했다. 대부분 학업 스트레스나 왕따 등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박 부센터장 전언이다.
그는 “아동·청소년의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가정에서, 또 교육체계 안에서, 지역사회에서 이들이 고립돼 있지 않다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해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