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주간 이어진 국회 대정부질문이 또 막말과 고성으로 얼룩진 싸움판이 됐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정부 국무위원을 대상으로 국정 현안 등에 관해 질의하고 응답하는 제도인 대정부질문이 여야 간 정쟁으로 변질된 모습이다. 일각에선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 뿐 아니라 장관 등 국무위원들도 대정부질문을 ‘자기어필’을 위한 무대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죽했으면 대정부질문 첫날인 5일 김진표 국회의장은 “서로 다른 견해가 나오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 초등학교 반상회에 가도 이렇게 시끄럽지 않다”고 개탄했다.
◆‘쓰레기’ 막말에…항의방문·징계안 후폭풍
지난 6일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과 김영호 통일부 장관 대정부질문 중에는 ‘쓰레기’라는 말이 나왔다. 태 의원이 질의 도중 “독재정권 김정은 편을 들면서, 북한 인권 문제만 나오면 입을 닫고 숨어버리는 민주당은 ‘민주’라는 이름을 달 자격도 없는 정당”이라며 “이런 것이 바로 공산 전체주의에 맹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야당 의원들이 항의하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박영순 의원이 “북한에서 쓰레기가 왔네” 등의 거친 언사로 태 의원을 비난한 것이다.
태 의원은 다음날인 7일 민주당 이재명 대표 단식 농성장을 찾아 박 의원의 출당 조치 등을 요구했다. 태 의원은 “어떻게 이런 말을 본회의장에서 할 수 있나”라며 “대표께서 책임지고 박 의원을 출당시키고, 의원직을 박탈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대표는 반응하지 않은 채 듣기만 했다. 이윽고 태 의원이 떠나자 “본인은 엄청 억울했던가 보다”라고 혼잣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이날 부산에서 기자들과 만나 “일반 국민도 그런 용어를 쓰지 않을 것”이라며 “민주당은 박 의원에 대해 확실한 징계와 법적 조치를 하라”고 요구했다. 반면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야당 대표 단식장까지 찾아와 행패를 부린 태 의원은 무뢰배인가”라며 “사람에 대한 기본 예의조차 갖추지 못하고 어떻게 국민의 대표라 할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쓰레기’ 발언을 한 박 의원은 입장문에서 태 의원이 과거 자신의 SNS에서 ‘Junk’(쓰레기)라는 단어를 써 민주당을 비난한 점을 상기시키며 “태 의원이 그간의 모욕을 사과하면 저도 사과하겠다”고 밝혔다. 태 의원이 지난 4월 페이스북에 “Junk Money Sex 민주당, 역시 JMS 민주당”이라며 논란이 된 사이비 종교단체 기독교복음선교회(JMS)를 야당을 빗댄 것을 박 의원이 거꾸로 꼬집은 것이다.
결국 국민의힘은 8일 박 의원을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소했다. 징계안은 당 소속 의원 21명이 공동 발의했으며, 징계 사유는 국회의원 품위 유지 위반이다. 장동혁 원내대변인은 징계안 제출 후 기자들과 만나 “민의의 전당인 국회 본회의장에서 나올 수 없는,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명예훼손적이고 인신모독적 발언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엄중한 징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아울러 국회 대정부질문 도중 ‘대통령 탄핵’을 언급한 민주당 설훈 의원에 대한 징계안도 함께 제출했다.
조해진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태 의원과 최근 ‘흉상 이전’ 논란을 빚고 있는 홍범도 장군을 비교하며 “한때 공산당원이었던 사람을 국회의원 시키면서 한때 공산당이었다고 파묘를 하나”라고 비꼰 것을 반박하기도 했다. 조 의원은 “태영호 의원은 한 때 공산당원이었다가(확인 필요) 자유민주주의자가 된 사람이고, 홍범도 장군은 한 때 독립운동가였다가 공산당이 돼서 공산당원으로 인생을 마친 사람”이라고 적었다.
◆국회 본회의장서 첫 ‘대통령 탄핵’ 언급까지
대정부질문 첫날인 지난 5일엔 윤석열 정부 들어 처음으로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통령 탄핵’ 언급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 정치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첫 질의자로 나선 설훈 민주당 의원은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대통령이 직권남용한 것이 분명하고 법 위반한 사실이 분명하다”며 “탄핵 소지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설 의원은 “장관이 결재한 결재안을 뒤집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라며 “총리는 아닐 테고 대통령밖에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설 의원 발언 직후 여야 의원 사이에선 고성이 터져 나왔다. 일부 야당 의원이 “특검해야 한다”고 외치자 여당 의원들은 “말은 가려서 하라” “가짜뉴스”라고 맞받았다. 한 총리는 “의원님 말씀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많은 국민은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지 않다”고 답했다.
여야 의원들이 고성을 주고받자 김진표 국회의장은 자중을 요청하며 “서로 다른 견해가 나오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 초등학교 반상회에 가도 이렇게 시끄럽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의장은 이날 대정부질문 시작 전에도 “질의할 때 최대한 예의를 갖춰주고 동료 의원이 질의할 때 경청하는 자세를 보여주기 바란다”며 “국무위원의 답변이나 동료의원 질의에 설사 동의하기 어려운 점이 있더라도 평가는 국민이 하는 만큼 경청하는 모습 보여줄 것을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했다.
◆윤 대통령 주문에 싸우는 장관들?
8일 대정부질문서도 장관과 야당 의원의 충돌은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날 내년 총선 출마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다 서로 날 선 발언을 주고받았다.
안 의원이 “내년 총선에 출마하느냐”고 묻자, 한 장관이 “여러 번 말했다. 제 임무를 다하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안 의원은 “정치는 할 것이냐”고 재차 물었다. 한 장관이 “그런 문제를 대정부질문에서 물을 건 아니다. 의원님은 출마하느냐”고 되물었고, 안 의원이 “저는 한다”고 답하자 한 장관은 “잘되기를 바란다”고 받아쳤다.
이에 안 의원은 “그런 답변 태도가 문제다. 역대 한 장관처럼 국회의원들과 싸우는 장관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태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고, 한 장관은 “의원님 평가이고, 제가 판단해서 잘 답변하겠다”고 응수했다. 안 의원은 “오늘 이 자리에서 한 장관이 그동안 했던 무례한 발언, 동료 국회의원들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 일련의 불순한 태도에 대한 사과를 정중히 할 기회를 주려 한 것”이라며 “장관은 국회에 싸우러 온 거냐. 국민들이 우습냐”고 따졌다. 또 “국민이 두렵지 않으냐. 본인이 그동안 한 발언이나 태도에 대해 사과할 생각이 전혀 없느냐”고 다그쳤다.
그러자 한 장관은 “의원님은 민원인에게 욕설을 한 분이 아니냐. 지역구에 욕설문자를 보낸 분이지 않으냐”며 “그런 분이 여기 와서 누구를 가르치려고 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제가 안 의원에게 그런 식의 훈계를 들을 생각은 없다”고 맞받았다. 한 장관은 또 “윤지오라는 사람을 공익제보자로 치켜세우면서 공익제보 제도의 존재 가치를 무너뜨린 분”이라고 안 의원을 직격한 뒤 “의원 질의 내용에 대해 수긍하지 못하는 점이 많다는 것을 이 자리를 빌려 말씀드린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의 설전이 이어지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의원이 먼저 사과하라”라고 외쳤고, 민주당 의원들은 “예의를 지키라”고 소리치는 등 각각 고성으로 말싸움을 벌였다. 안 의원은 “한 장관이 사과하기 전에는 질의를 하지 않겠다”며 김영주 국회부의장에게 ‘장관 사과를 받아달라’고 요청했다. 김 부의장은 “안 의원이 정치 출마부터 물은 것은 대정부질문에 적절한 질문은 아니었다”며 “한 장관도 답변을 좀 공손하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중재했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이같은 정국 교착의 책임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있다고 꼬집었다. 박 전 원장은 7일 오마이TV ‘성경환이 묻고 박지원이 답하다’에 출연해 “대통령은 여야 협치를 이끌어야 하는데, 대통령이 야당과 언론, 진보세력을 ‘공산전체주의세력’이라고 지칭하니까 한덕수 국무총리, 박민식 보훈부 장관, 김영호 통일부 장관 같은 사람이 야당을 졸로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주먹 휘두르면서 싸워라 하니까, 게나 고동이나 지금 다 나서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무회의 비공개 발언을 통해 각 부처 장관들을 향해 “여야 스펙트럼 간극이 너무 넓으면 점잖게 얘기한다고 되지 않는다”며 “전사가 돼 싸워야 한다”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국무위원들은 정무적 정치인이고, 말로 싸우라고 그 자리에 있는 것”이라며 “공격받고 비판받는 걸 두려워하면 안 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