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규칼럼] 갱년기 경제

근로의식 퇴색 불로소득 집착
사회 병리 행태에 저성장 빠져
경제 윤리 회복 국가 기강 확립
미래 투자로 경제 활력 넣어야

지난 상반기 중 미약하게나마 회복세를 보이던 경기가 최근 들어 다시 위축되고 있다. 중국 경제가 예상외로 부진한 데 영향을 받았다. 앞으로 중국 경제 사정이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우리 경제의 전망도 과히 밝지 않다. 최근 일부 국제투자은행들은 우리 경제의 내년도 성장률을 1%대로 낮추었다. 이 추세가 이어진다면 조만간 경제 규모마저 위축될지도 모른다. 작년에 이미 달러 표시 1인당 국민소득은 7.4%나 감소하였다. 요컨대 우리 경제는 2010년대 이후 지속하는 저성장 무기력 추세가 앞으로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지금 우리 경제의 부진상은 한마디로 갱년기 경제(climacteric economy)로 표현할 만하다. 이 용어는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올랐던 경제가 언젠가는 시련을 겪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경제사학자들이 사용해 왔다.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오른 지 2∼3세대가 지나면 이러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되는데 경제개발 계획을 추진한 지 6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가 이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이종규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

갱년기 경제 현상이 나타나는 배경에 관해서는 두 가지 견해로 나뉜다. 성숙 경제에 이르면서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기 어렵고 후발 국가들의 추격이 드세지기 때문에 그 현상이 불가피하게 나타난다는 견해가 있다. 다른 견해는 사회 구조의 고착화, 기업가 정신의 퇴락 등 사회 전반의 병리 현상으로 인하여 경제 활력이 저하된다고 본다. 갱년기 현상 불가피론은 일부 수긍되기는 하지만 대응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실용적인 측면에서는 사회 병리 현상이 갱년기 경제를 초래한다는 두 번째 견해가 한층 설득력이 높다.



우리나라도 사회 병리 현상 때문에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지금 우리는 한국병(Korean malaise)에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동산 투기 열풍, 빚투 현상 등에서 보듯이 근로의식이 퇴색하고 불로소득에 집착하고 있다. 정부 보조금 부정 수급, 보험금 과다 수령 등 도덕 해이도 심상치 않다. 바가지요금이 성행하는 등 상도덕도 무너졌다. 세계 잼버리 대회 등을 통해 공조직의 무능과 무사안일의 행태도 여실히 목도하였다. 심지어는 불법과 편법에 해당하는 소위 순살아파트가 등장하고 경제 약자를 갈취하는 전세사기와 같은 파렴치 행태도 나타나고 있다. 금융권에서조차 직원의 예금 착복, 주가 조작, 펀드 사기 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경제 전반의 무력증을 벗어나기 위한 체계적인 대책이 아예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정치권은 진영이기주의에 함몰되어 정치적 이해관계만 내세우고 경제는 아예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다. 정부 쪽을 보면 지난 정권의 정책적 과오도 문제였지만 현 정부의 자유방임적 정책 기조도 지금의 한국병을 도지게 할 여지가 많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하겠다.

돌이켜 보면 그동안 성장률이 낮아지면서 각자도생의 경향이 심화하였는데 이제는 개인적 차원의 이익을 탐닉하는 수준을 넘어 남에게 폐를 끼치는 행위도 스스럼없이 자행하기까지 이르렀다. 지금 우리가 갱년기 경제를 경험하는 이유는 바로 이처럼 경제 윤리가 퇴색하는 한국병 때문이었다.

갱년기 경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획기적으로 변해야 한다. 첫째로는 일반 경제 주체들의 경제 질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요구된다. 지금 우리는 남에게 누를 끼치면서까지 돈을 버는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통찰하여야 한다. 각자가 소임을 다하는 윤리의식을 회복하고 국가 기강을 되살림으로써 한국병을 치유하는 것이 무엇보다 급한 일이다.

둘째로는 정책 기조를 전향적으로 바꿔 무기력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현재 정부는 재정건전성 확보 차원에서 소극적인 정책 기조를 고수하고 있는데 이는 근시안적이다. 경제 부진이 이어지면 재정건전성은 악화할 수밖에 없다. 지금 미래 산업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산업정책을 강화하고 있는 세계 주요국들에 비해 뒤처져서는 절대 안 된다. 재정건전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적극적 산업정책을 추진할 묘안을 찾아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