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를 피해 일가족 3명이 발코니에 매달렸다가 추락해 2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친 부산 부산진구의 한 아파트엔 피난시설인 ‘경량 칸막이’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노후 아파트에 거주하며 과일 장사로 생계 이어가던 다문화 가족의 참변에 이웃 주민들은 안타까움을 표했다.
10일 부산소방안전본부와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A 아파트는 고층 건물 화재 시 발코니를 피난구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주택법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 노후 아파트로 확인됐다. A 아파트의 준공 시점은 31년 전인 1992년 2월로, 주택법상 경량 칸막이 등 피난시설 구비 규정이 신설된 1992년 7월보다 빨랐다.
또 통상 주택법 적용은 아파트 건축 협의 시점부터 적용된다. A 아파트의 건축 협의는 주택법 관련 규정이 신설된 시기보다 훨씬 이른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A 아파트는 경량 칸막이 설치 의무 대상이 아니었다.
얇은 두께의 석고보드나 합판으로 제작된 벽인 경량 칸막이는 비상 대피 시 발로 차는 등의 충격만으로도 파괴할 수 있어 옆집으로 대피할 수 있는 피난시설이다.
앞서 전날 오후 4시18분쯤 B(45)씨, 아들(4), B씨 장모(57)는 불이 난 아파트에서 현관문으로 나가지 못해 발코니로 피신해 창틀에 매달렸다가 추락해 B씨와 장모는 숨지고 아들만 생명을 건진 상태다.
경량 칸막이가 없는 7층 아파트 발코니에서 B씨 등 일가족 3명이 사실상 대피할 수 있는 수단은 없었던 셈이다. A 아파트엔 자동화재탐지설비는 설치돼 있었으나 정상 작동 여부는 현재 소방과 경찰이 조사 중이다.
현장 감식이 한창인 해당 아파트 주민들은 성실했던 이웃의 사망에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B씨와 베트남 국적의 B씨 아내인 C씨는 인근에 있는 시장에서 과일가게를 운영했다. B씨가 새벽 일찍부터 농산물 시장에 가서 과일을 가져오면 C씨가 가게에서 팔았다고 한다.
이 부부는 가게 장사로 바빠 어린 아들에게 소홀해질까 봐 베트남에 있던 C씨 모친을 한국에 모셔와 이곳에서 함께 지냈다. 사고 당일에도 평소처럼 새벽에 일을 마친 B씨가 아들, 장모와 함께 자택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화를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래층에 산다는 한 이웃은 “베트남인 엄마가 시장에 과일 장사하러 간 사이에 불이 났다”며 “B씨도 새벽부터 일해 피곤할 법한데도 항상 성실하게 사셨던 분인데, 이런 일을 당해 너무 황망하다”고 연합뉴스에 전했다.
이 가족은 평소 가게에서 팔고 남은 과일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며 선행을 이어간 것으로 알려져 주변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같은 아파트 동에 산다는 또 다른 주민은 “장사를 마치거나 집으로 돌아올 때 아내인 C씨가 경비실이나 경로당에 꼭 들려 과일을 가져다주고는 했다”며 “베트남에서 낯선 타국으로 와 생활이 힘들 법도 한데 주변에 항상 선행을 베풀었다”고 전했다.
현재 C씨는 아들이 입원한 병원과 모친, 남편 A씨의 빈소가 차려진 장례식장을 오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진구는 이번 화재로 피해를 본 아파트 주민 10여명에 대해 인근에 임시 숙소를 마련해 대피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