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선(가명·23)은 갓 스물을 넘겼을 무렵 4년 동안 만난 남자친구의 아이를 가졌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 시간이 흘렀다. 임신 중단과 출산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만삭이었다. 출산 직후 아기를 죽이고 버린 엄마 이야기를 뉴스에서 본 것이 스쳐 지나갔다. 극단적인 선택까지 고려했지만, 그 순간 죽을 용기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2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지선은 아기를 홀로 키우면서도 아기를 버린 여성을 무턱대고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10일 세계일보 사건팀이 최근 10년(2013~2022년)간 국내 영아유기·영아살해 판결문 250건을 분석한 결과, 상급심 중복 건수 등을 제외한 177건의 사례에서 피고인들은 여성 혼자인 경우가 대부분(77%)이었다.
범행 10건 중 7건은 출산 당일 내지는 하루 이내에 발생했다. 출산 장소는 산모에게 안전한 병원보다는 본인의 집(34%)이나 공용화장실·숙박시설(19%) 등에서 이뤄졌다.
완전히 고립된 여성은 비이성적인 상태로 ‘일단 상황 종료’를 위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지선은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이 상황을 끝내고 싶은 것. 사람이 너무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면 이성적인 판단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같이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이 옆에 있었다면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요?”라며 과거를 돌이켰다.
또 다른 미혼모 정수진(42)씨는 “아기가 덜컥 생겼는데 빚은 있고, 남자는 잠적하고 무서움이 앞섰다”며 “‘그냥 같이 죽어서 다 끝내야겠다’는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 뉴스에 나오는 사례들을 이해한다”고 고백했다.
홀로 아이를 양육하는 미혼모와 열악한 경제 환경 속 ‘독박육아’를 하는 이들 사이에선 여전히 국가의 지원 체계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영나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는 “해외와 달리 한국은 임신기 여성 대상 공공의 지원 체계가 공백 상태”라며 “의료비 지원은 필수고, 성교육과 임신·출산·육아 상담받을 수 있는 상담소를 늘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민정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도 “일정 소득 이상 올라가면 지원이 뚝 끊긴다”며 “낮은 소득을 유지하기 위해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은 양질의 일자리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대표는 “아동보호시설에 보내진 아이는 의료급여 1종 등 각종 지원을 받지만, 어려운 환경에서도 여성이 아이를 키워보겠다고 하면 시설만큼의 지원은 꿈도 꿀 수 없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