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식의세계속으로] 56년 만에 무너진 봉고가(家) 독재

佛의 비호받으며 代 이어 독재정치
독재는 멈췄지만 여전히 어두운 정세

한국에서 소형트럭이나 승합차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봉고는 원래 중앙아프리카 가봉이라는 나라의 대통령 이름이다. 봉고 가문은 아버지 오마르(1967~2009년)와 아들 알리(2009~2023년)가 반(半)세기 넘게 가봉을 지배함으로써 아프리카의 가장 오랜 독재의 철옹성을 형성했다. 하지만 지난 8월26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 결과를 조작했다가 쿠데타라는 반격을 맞아 단숨에 무너져버렸다.

얼마 전 니제르의 쿠데타가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반(反)민주적 군부 개입이었다면, 이번 가봉의 쿠데타는 부정 선거로 집권 연장을 꾀하는 독재자를 무너뜨렸다는 차이가 있다. 그렇다고 선거에서 승리가 뚜렷해 보이는 야당 후보를 쿠데타 세력이 대통령으로 옹립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집권세력의 한 분파인 봉고의 사촌 올리기 응게마가 이행기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봉고의 직계 독재는 무너졌으나 민주적 정권 교체가 이뤄진 것은 아니기에 가봉 사태의 의미가 애매한 상황이다.



56년간 세습을 통해 유지되었던 가봉 독재의 붕괴는 무엇을 뜻하는가. 프랑스는 1960년대 아프리카 식민지들이 독립한 이후에도 신생국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프랑스와 아프리카를 합쳐 ‘프랑사프리크’라 불리는 신(新)식민주의 체제를 만들었었다. 오마르 봉고는 프랑스 정계와 긴밀한 관계로 정치 자금을 대주면서 대가로 안정적 독재의 권리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세상은 변해 1990년대 민주화의 바람이 불었고, 프랑스 국내에서도 ‘프랑사프리크’에 대한 여론의 비판과 사법당국의 부패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프랑스에 엄청난 재산을 소유한 봉고 가문 수사망이 좁혀지자 프랑스와 가봉의 관계도 악화했다. 아버지 봉고는 파리가 아닌 바르셀로나에서 치료받다 숨졌고, 아들 봉고도 2018년 뇌졸중 치료를 프랑스가 아닌 영국과 모로코에서 받았다.

독재를 옹호하던 프랑스는 이제 더 믿을 만한 후견세력이 아니었고 따라서 프랑스와 가봉의 사이도 멀어졌다. 아들 봉고는 급기야 프랑스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2022년 영국이 주도하는 영연방에 가입하기에 이르렀다. 프랑스는 지금도 가봉에 군사 기지를 유지하고 있으나 쿠데타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최근 감금된 알리 봉고는 심지어 가봉의 국어인 프랑스어가 아닌 영어로 자신을 도와달라는 동영상을 찍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앞으로 가봉은 어디로 갈 것인가. 한 가문의 독재가 다른 가문이나 세력의 독재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가장 우려스럽다. 한국에서 유신체제의 종말이 전두환의 독재로 이어졌듯 말이다. 현재 가봉의 다양한 야당 세력도 민의를 대변하기보다는 기존 권력 집단에서 소외되거나 독립한 분파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근대 국가의 틀이 취약한 만큼 아프리카 많은 지역에서는 어느 세력이 권력을 잡더라도 약탈적 행태를 보여왔다. 게다가 최근에는 러시아의 무자비한 용병 세력이나 중국의 풍족한 경제 지원이 아프리카의 독재에 숨통을 열어주는 모양새다. 가봉은 서방세력인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왔으나 이들로부터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면 러시아나 중국의 품에 안길 위험도 있다. 봉고가의 종말이 일단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동시에 미래의 그림자가 여전히 짙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