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예매는 젊은이들이나 하지, 우린 못 해. 독수리(타자)로도 안 돼.”
지난 7일 오후 2시쯤 서울 강남구 수서역 SRT(수서고속철도) 매표소 앞에는 추석명절 잔여석을 기다리는 인파로 북적였다.
이날은 오후 3시부터 잔여석과 입석에 대한 현장 예매가 있는 날이었다. 100여명의 대기 행렬 가장 앞줄에서 연신 시계를 확인하던 전창한(68)씨는 “부산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니도 뵙고, 성묘도 해야 해서 일정상 추석 전날 꼭 내려가야 한다”고 간절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입석이라도 탈 수 있다면 좋겠다”며 “현장 예매를 없애면 우리 같은 나이 든 사람들은 어떡하라는 건가”라고 푸념했다.
추석연휴 승차권 예매 현장은 ‘대국민 티케팅’이라 불릴 정도로 불꽃 튀는 경쟁이 펼쳐진다. 이런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설·추석명절 기차표 예매가 100% 온라인 예매로 전환되면서, 디지털 취약계층인 고령자들의 소외가 한층 심화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SRT 잔여좌석 대기 행렬 가장 뒤쪽에 서 있던 김정은(70)씨는 “손녀랑 같이 여수로 여행을 가고 싶어서 온라인 예약을 해보려 했는데 (대기 순번) 7000번이 떴다”며 “온라인 예매는 내 연배 친구들 20명 중 1명 할까 말까인데, 젊은 사람들한테만 혜택”이라고 토로했다. 나현옥(65)씨는 “온라인 예매에 다 실패해서 일단 부딪혀 보자는 심정으로 2시간 전에 왔다”며 “잔여석이 남아 있는지도 알 수 없고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귀성객이 가장 많은 연휴 첫날(9월28일)과 마지막날(10월3일)은 전석 매진으로 잔여석이 남지 않아 입석조차 귀한 상황이 펼쳐졌다. 희끗한 백발의 80대 김모씨는 “아들 직장이 있는 구미에 아내랑 갈 건데 입석밖에 안 남았다고 한다”며 “현장 예매가 있을 때는 새벽 일찍 나와서 앉아가는 표를 샀었는데, 이젠 입석도 ‘감사합니다’ 하는 판”이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3시간을 기다린 끝에 입석을 손에 쥔 전모씨도 “나야 아직 서서 갈 수 있지만, 80∼90대 노인분들은 어떻게 서서 가나”라고 한탄했다.
반면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 등에선 추석연휴 암표 거래글이 잇따랐다. 이에 코레일 등은 ‘암표제보 게시판’과 ‘실시간 모니터링’을 운영하며 강력 대응에 나섰지만, 이날도 판매자들이 온라인 예매기간 선점한 여러 장의 좌석표에 웃돈을 얹어 팔거나 구매자의 가격 제시를 요구하는 게시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민아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노년층을 비롯해 디지털 접근성이 떨어지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온라인 예매나 키오스크 등이 하나의 장벽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지역 단위에서 디지털 교육이 이뤄지고 있지만, 100% 온라인 예매와 같이 급격한 전환 앞에 노년층은 심리적 위축을 겪는다”며 “현재의 디지털 격차를 고려한 섬세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