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의계와 한의계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둘러싼 지난한 싸움을 두고 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법원이 지난달 한의사의 ‘뇌파계’ 기기 사용이 적법하다고 판단한 데 이어 다시 엑스레이(X-ray) 방식의 골밀도 측정기 이용까지 허용하는 판결을 내리면서 양의계가 반발한 때문이다. 종착점이 보이지 않는 양측의 갈등을 놓고 합리적인 조정과 중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수원지법 형사14단독 이지연 판사는 13일 골밀도 측정기 이용에 따른 의료법 위반 혐의로 약식기소된 한의사 김모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김씨는 엑스레이 방식의 골밀도 측정기를 환자 진료에 사용해 벌금 200만원의 약식 명령을 받자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이날 법정에서 무죄 선고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한 혐의로 기소된 한의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앞선 판결과 같은 취지의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 “한의사가 보조 수단으로 사용, 위해 판단 어려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12월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진료에 사용해도 의료법 위반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당시 대법원은 “한의사가 진단 보조 수단으로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보건위생에 위해를 발생시킨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지난달에는 뇌파계 사용 후 면허정지 처분을 받은 한의사가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낸 면허 자격정지 처분 취소소송에서 대법원이 원고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당시 대법원 관계자는 “뇌파계를 파킨슨병, 치매 진단에 사용한 행위가 ‘한의사로서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첫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양의계와 한의계는 뇌파계 기기 사용의 합법 여부를 두고 13년간 공방을 이어왔다.
이번 골밀도 측정기 관련 판결에 대해 대한한의사협회는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판결 직후 성명을 내고 “정의로운 판결”이라며 지지했다.
판결을 앞두고 전국 한의사 1만5000여명의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하기도 했던 한의사협회는 최근 한의사들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인정하는 판결이 잇따라 나온 것을 언급하며 “정부에서도 빠른 후속 조처를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무시한 무책임한 판결”이라며 “의료법상 의료인 면허제도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것이며,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 국소마취제·신속항원검사 놓고도 소송
이처럼 양측의 갈등은 쉽게 마무리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의사가 국소 마취제인 ‘리도카인’을 사용한 것을 두고도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마취제이자 부정맥 치료제인 리도카인은 액제와 크림, 연고 등의 형태로 활용되는 전문의약품이다.
한의사 A씨는 봉약침액 시술을 하면서 리도카인을 섞어 사용하다가 의료법 위반 혐의로 벌금 800만원의 약식 명령을 받았으나 이에 불복해 지난해 10월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A씨는 환자의 통증을 줄이기 위해 마취제를 혼입했다고 주장한다.
이 재판은 오는 11월 선고 공판을 앞두고 있다.
같은 달 한의사들이 질병관리청을 상대로 제기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속항원검사 사용에 대한 행정소송 1심 판결도 나온다.
코로나19가 확산하던 당시 한의사협회는 ‘한의사들도 신속항원검사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정부에 지속해서 의견을 개진했으나 보건당국은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질병관리청장은 한의사들의 질병보건통합관리시스템 접속을 차단했고, 한의사 13명은 지난해 10월 질병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