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각지의 공공도서관과 초·중·고교 도서관에 비치된 성교육·성평등 관련 도서를 ‘유해도서’로 규정해 폐기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학부모단체의 민원에 지역 정치권이 가세, 논란을 키우는 모양새다.
14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국민의힘 이상욱 서울시의원은 전날 서울시의회 의원회관에서 전국학부모단체연합(전학연) 등 보수성향 학부모단체와 함께 ‘유해·음란도서 회수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시의원은 “비상식적인 성문화를 조장하는 책이 서울시교육청 산하 공공도서관과 학교 도서관에 각각 218권, 1258권 비치돼 있다”며 “여기엔 집단 성행위, 동성 간 성교, 수간을 설명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처럼 불필요한 도서가 포함된 건 (도서관의) 도서 구입과 추천 과정의 문제점이 드러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시내 일부 공공도서관은 민원 등의 이유로 이 책들의 검색이나 대출을 차단하는 조치를 취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학연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서울시교육청에 부적절한 도서 회수를 요청하는 민원을 넣고 있다”고 말했다. 관내 구립도서관 사서는 “원래 어린이 자료실에 비치했던 유아용 성교육 책을 보관서고로 옮겼다”며 “도서관 홈페이지에 검색해도 ‘대출 불가’로 조회되도록 했다”고 전했다. 이 시의원은 “도서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며 “공공도서관은 물론 학교 도서관에서도 열람제한이 아니라 회수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앞서 충남도에선 특정 학부모단체의 반복적인 민원에 일부 도서관이 성교육·성평등 도서를 열람 제한한 데 이어 김태흠 지사가 지난 7월 도의회에서 “7종 도서에 대해 도내 36개 도서관에서의 열람을 제한했다”고 밝혔다. 이달 6일 경기도의회에선 한 도의원이 유해도서에 대한 대출과 열람을 즉시 중단할 것을 제안해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경기지부가 비판 성명을 발표하는 등 찬반 논쟁으로 비화하기도 했다.
출판계는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한국출판인회의는 지난달 28일 성명서를 내 “최근 특정 단체가 일부 도서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수집한 도서관을 대상으로 금서목록을 만들어 부당한 압력을 통한 열람제한과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며 “일체의 도서검열과 지적자유 침해 행위가 중단되길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대한출판문화협회도 “문제가 제기된 도서들은 오래전부터 문제 없이 전국의 도서관에서 대출이 되고 있는 도서로서, 사회 공동의 가치와 유익을 훼손한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학부모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14일 서울 종로구 소재 대형서점에서 만난 주부 양모(37)씨는 “그림이 과하게 노골적이거나 아동의 나이에 맞지 않는 성교육책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책의 유해성을 정치인이나 일부 학부모단체가 정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지적했다. 8살 자녀를 둔 회사원 박모(44)씨는 “아이들은 이미 인터넷에 떠도는 음란물을 통해 성지식을 너무 많이 알고 있다”며 “책을 통해 궁금해하는 것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게 낫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