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정지아/마이디어북스/1만7000원
‘빨치산의 딸’인 작가는 사회주의자 아버지를 통해 처음 술의 세계를 접했다. 고교 졸업을 앞둔 열아홉 크리스마스 이브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자 아버지는 “쩌번에 담가논 매실주 쪼가 퍼 오소”라고 말하며 어머니와 함께 집을 비워 준다. 그렇게 작가는 소복소복 눈 쌓이는 소리와 함께 첫 술에 대한 달콤한 기억을 갖게 됐다. 백색의 눈을 보며 작가는 “이토록 순수하게, 이토록 압도적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수배자 신분으로 숨어 지내야 했던 3년,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홀로 지리산에 올라 산장에서 만난 이들과 갖게 된 술자리는 아찔한 기억이었다. “나 기억 안 나요? 삼 년 전인가, 서울대에서 노동자의 날 시위 때 만났는데? 그때 지아씨가 내가 든 화염병 박스 들어 줬잖아요?”라고 말하는 동석자에게 신분이 들통났지만 그들 모두 각기 다른 방식으로 군부 독재에 저항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위스키에 취해 잠시나마 자유와 연대의 밤을 보낸다.
2022년 서점가를 뜨겁게 달군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작가 정지아가 첫 번째 에세이를 내놓았다. 소문난 애주가답게 술을 매개로 벌어졌던 일들과 사람들에 관한 34편의 이야기를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