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박쥐 만나러 4억년 신비 가득 광천선굴 가볼까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사계절 지하수 흐르는 신비의 동굴/1년에 단 열흘만 입장허용하다 ‘광천선굴 어드벤처 테마파크’로 지난해 11월 새로 열어/넓직한 통로따라가며 다양한 동굴생성물 감상/멸종위기 붉은박쥐·토끼박쥐도 만나

광천선굴.

암반을 뚫고 흐르는 장쾌한 물줄기는 볼수록 신기하다. 산속 계곡도 아닌 깊은 땅속 동굴에서 이런 풍경을 만나다니. 마치 커다란 용이 훑고 지나간 듯 동굴벽에 또렷이 새겨진 지하수 흔적과 4억년 세월 동안 자연이 조각한 기기묘묘한 종유석, 석순까지. 미지의 세계로 나서는 모험가처럼 호기심 가득 안고 지구의 생성 비밀이 담긴 태초의 자연, 광천선굴로 탐험을 나선다.

광천선굴 조형물.
광천선굴 입구.

◆사계절 지하수 흐르는 신비의 동굴

 

강원 평창군 광천선굴은 1년에 단 열흘만 인간의 발길을 허용하던 곳이다. 동굴이 깊은 계곡처럼 험난한 데다 칠흑같이 어두운 곳에서 자칫 사고가 날 수 있기에 무더위가 절정인 8월 더위사냥축제기간에만 한시적으로 개방됐다. 이처럼 베일에 휩싸였던 광천선굴은 지난해 11월부터 비로소 그 신비를 드러냈다. 평창군이 88억여원을 들여 주굴과 지굴 4개 노선에 조명 등 관람시설을 만들어 ‘광천선굴 어드벤처 테마파크’로 새로 문을 연 덕분이다.

광천선굴 주굴.

안전모 턱끈을 단단히 조여 매고 동굴 탐험을 시작한다. 보통 동굴은 어두컴컴하고 천장이 낮아 마치 기어가듯 어렵게 여행해야 하는 곳이 많은데 광천선굴은 스케일이 남다르다. 바닥에 널찍한 데크가 깔렸고 조명이 밝게 설치돼 동굴 천장과 벽 지질 특징을 편하게 관찰할 수 있다. 동굴인데 조명 때문에 “아름답다”는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종유관, 종유석, 석순, 석주, 유석, 휴석소, 커튼, 동굴진주 등 웬만한 동굴생성물은 거의 다 볼 수 있다. 통로는 대체로 수평이지만 일부 구간에선 경사, 수직, 미로, 협곡 등 다양한 형태로 이뤄졌다. 국내에서 발견되는 동굴생성물 색이 대부분 황갈색, 흰색을 띠지만 광천선굴은 대부분 암회색, 회색, 검은색이다. 동굴생성물 색은 대부분 물속에 포함된 부식질 지표 및 땅속에 존재하는 유기물 총체의 종류에 따라 결정된다. 

지하수.

광천선굴은 ‘넓은 천이 흐르는 선인이 수양한 동굴’이란 뜻. 상·중·하 3층 구조로 이뤄졌고 하층에 이름처럼 폭넓은 지하수가 사계절 장쾌하게 흐르는 모습이 이채롭다. 주굴 벽면엔 움푹 팬 흔적이 매우 크고 또렷하게 새겨졌는데 과거 동굴 내부를 흘렀던 지하수의 수위 변화를 보여주는 요철지형이다. 지하수가 흘러 오목하게 파인 곳을 니치(niche), 지하수의 수위가 급격하게 변해 녹지 않고 튀어나온 곳을 노치(notche)라고 하는데 이런 니치와 노치가 교차하는 요철지형이 동굴 곳곳에 발견된다. 주굴에서 발견되는 요철지형은 지금은 하층에서만 흐르는 지하수가 과거 주굴에서 흘렀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최소 7차례 걸쳐 그 수위가 바뀐 것으로 파악됐다. 

요철지형.
요철지형.

아니나 다를까. 안으로 좀 더 깊숙하게 들어가자 데크 아래 하층굴을 흐르는 장쾌한 지하수를 만난다. 동굴여행을 많이 가봤지만 이처럼 동굴 안에 계곡물처럼 흐르는 또렷한 지하수를 눈으로 목격할 수 있는 곳은 처음이다. 더구나 천장에서도 물줄기가 비처럼 줄줄 쏟아진다. 광천선굴은 대표적인 석회암 동굴. 지표에서 스며드는 빗물이나 지하수가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만나 탄산을 만들고 이 탄산이 석회암을 녹이면서 동굴이 형성됐다. 특히 지하수가 바닥, 벽면, 천장 등 동굴 통로를 녹이고 깎으면서 만들어진 작은 규모 지형인 ‘동굴미지형’이 잘 발달해 지질학적 가치가 매우 큰 것으로 평가된다. 지하수는 지금도 동굴을 계속 변화시키고 확장시켜 여전히 살아 숨 쉬게 만든다. 광천선굴의 전체 규모는 850m이며 주굴(주요통로) 330m, 지굴(가지처럼 뻗은 통로) 520m로 전국 개방 동굴들 가운데 중상위 그룹에 속한다. 평창군에서는 백룡동굴(약 1.8㎞)과 섭동굴(약 1.4㎞) 다음으로 큰 동굴이다. 

원시인 조형물.

◆귀여운 아기박쥐를 찾아라

 

“저기 천장을 자세히 보세요. 박쥐를 찾으셨나요.” 동굴 탐방객들은 해설사가 가리키는 방향을 목이 빠져라 살펴보지만 박쥐를 쉽게 찾지 못한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린 커다란 박쥐만 떠올리기 때문이다. 이곳의 박쥐들은 벽에 납작하게 달라붙어 있어서 잘 눈에 띄지 않는다. 방법이 있다. 휴대전화 카메라로 확대해보면 박쥐가 잘 보인다. 수십 마리가 한곳에 다닥다닥 붙어 마치 바위에 붙은 버섯군락과 비슷하다. 운이 좋으면 아기박쥐가 꿈틀대거나 날아다니는 모습도 만난다.

광천선굴 박쥐.

박쥐는 포유동물의 25%를 차지하며 극지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약 1400여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에 70% 이상은 동굴을 휴식지(주간 잠자리·동면·출산)로 이용한다. 광천선굴에선 붉은박쥐(멸종위기 1급 ), 토끼박쥐(멸종위기 2급)와 관박쥐, 물윗수염박쥐, 큰발윗수염박쥐, 관코박쥐, 긴가락박쥐 등이 발견된다. 박쥐뿐 아니라 우리나라 동굴생물을 대표하는 아시아동굴옆새우, 등줄굴노래기, 반도굴아기거미, 장님좀먼지벌레 등 75종이 서식하는데 다른 동굴과 비교할 때 종의 다양성이 대단히 우수해 생태학적 가치도 크다. 

방문자센터.
방문자센터.

방문자센터에선 광천선굴을 좀 더 자세하게 만날 수 있다. 동굴 규모, 형태, 평면도, 발달방향 등 다양한 정보가 담겼다. 특히 석회동굴의 형성 과정과 석순, 종유석, 종유관, 석주, 동굴진주 등 다양한 동굴생성물의 생성원리, 생성 위치에 따른 명칭, 서식환경에 따른 동굴생물의 분류, 박쥐의 특성과 수명 등 다양한 정보가 알기 쉽게 잘 정리돼 있다. 옛사람들이 횃불에 의지해 동굴을 탐험한 뒤 체험기나 시의 형태로 남긴 많은 기록들도 살펴볼 수 있다. 평창남부권에는 고마루 카르스트, 청옥산 육백마지기, 마하리 구하도 등 과거 지구 역사의 증거와 현재 지구 표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을 반영하는 지질 명소들이 넓게 분포돼 함께 묶어서 둘러보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