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니가타현 북서쪽 사도섬에 위치한 사도광산은 최고(最古)이자 최대 금 생산지였다. 1601년 금맥이 발견된 이래 에도 시대(1603∼1867년) 도쿠가와 막부의 금고 역할을 했다. 1931년 만주사변, 그 뒤 중일전쟁 이후 이 광산은 구리와 철, 아연 등 전쟁물자를 확보하는 시설로 활용됐다. 일본 정부문서에 따르면 일제는 1939년부터 1943년까지 최소 1141명의 조선인을 이곳에 끌고 와 강제노역을 시켰다. 노동 환경은 가혹했고 임금도 식비와 침구대, 작업비 구입비를 제해 쥐꼬리에 그쳤다. 참담한 비극의 현장이다. 조선인 중 10명이 숨졌고 148명이 고통을 피해 도망쳤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일본 정부는 작년 2월 초 이곳을 202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추천서를 냈다. 추천 시기가 에도 시대로 한정돼 조선인 강제노역이 쏙 빠졌다. 일본이 2015년 세계유산에 등재한 하시마(端島·군함도)를 추천할 때 대상 기간을 1910년 이전으로 설정한 꼼수와 판박이다. 군함도 탄광에는 태평양전쟁 당시 많은 식민지 주민과 전쟁 포로가 끌려와 혹독한 노역에 시달렸다. 1925년 이후 20년간 1295명이 숨졌고 이 중 조선인은 122명에 달한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