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미칼럼] 이재명 단식 정치가 공허한 이유

권력 차지하고 지키기 위해
자기 희생 서사마저 만드는 정치
‘사즉생 단식’ 국민 공감 못 얻고
극단적 대결 구도로 정치 실종돼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이 즐겼다는 미국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 원작은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의 참모가 쓴 동명 소설이다. 원작 소설에도, 미국 드라마에도 권력을 잡기 위한 술수와 음모, 협잡이 날것 그대로 펼쳐진다. 대처의 핵심 참모 출신으로 의회 상원의원인 작가 마이클 돕스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드라마일 뿐”이라고 하지만 그의 경험 덕분에 정계 커튼 뒤에서 벌어지는 권력 투쟁이 생생하다.

소설 주인공인 여당 원내대표는 총리(미국 드라마에서는 대통령) 자리를 차지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대개 이런 유의 작품에 우리가 기대하는 결말은 권선징악이다. 주인공이 저지른 온갖 악행의 진실이 드러나고 그를 정치적, 법적 책임을 묻는 처형대에 세우는 것. 소설의 결말은 반전이다. 자신의 악정(惡政)에 여론은 물론 내각과 소속 의원들마저 돌아서자 주인공은 ‘순교’를 자처한다. 경호를 물리치고 분노한 수만명의 시위 현장을 찾아가 끝내 피격된 뒤 그는 미소 지으며 이렇게 말한다. “위대한 폐허야.”

황정미 편집인

주인공 소속 정당이 선거 역사상 유례없는 표를 얻는 그의 ‘마지막 승리’로 소설은 끝난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자기 희생의 서사마저 만들어내는 정치란,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우리에게 가려진 장막 뒤 정치는 보이는 것보다 훨씬 전투적이고 잔혹하다. 요즘 여의도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새삼 정치 본질은 권력 투쟁이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단식을 시작한 지 19일째인 어제 병원에 긴급 이송됐다. 민주당은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통해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고 곧바로 한덕수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을 제출했다. 지난 1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결의한 대로다. 주변에서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다. 이 대표가 왜 단식을 하는지, 무엇을 얻으려는 것인지. 그가 단식 명분으로 내세운 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대통령 사과, 일본 핵 오염수 방류 반대 천명, 전면적 국정 쇄신이 평범한 이들에게 공명을 일으키지 못한 탓이다. 만일 그랬다면 여론이 움직였을 것이고, 집권 세력이 팔짱 끼고 바라보진 못했을 거다. 당 홈페이지에 연결된 이 대표 단식 영상에는 “이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야 한다”, “함께 따르겠습니다”, “이재명이 답이다”식의 극성 지지층 전의만 흘러넘쳤다.

이 대표는 단식 기간 최고위원회의에서 “총리를 포함한 내각이 총사퇴하고 새 (국정)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권력은 언제나 잠시”라고 했다. 사실상 윤석열 대통령에 국정에서 손을 떼라는 주문이다. 내각 총사퇴는 5·16 군사정변과 같은 쿠데타가 벌어질 때나 가능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에도 야당인 민주당의 내각 총사퇴 요구가 있었지만 국정 공백 등 지적에 흐지부지됐다. 당 안팎의 중단 권유에도 단식을 고집한 이 대표의 궁극적 목표가 윤석열정부 탄핵이라도 된다는 건가.

이 대표는 지난 탄핵 정국의 최대 수혜자였다. 성남시장이었던 그는 가장 먼저 탄핵을 외쳐 1∼2%대에 머물렀던 지지율이 치솟으며 유력 야권 후보였던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의 경쟁자가 됐다. 하지만 그 자신이 경험했듯 정권 탄핵의 동력은 여의도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민심이 움직여야 한다. 민주당 내에서도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안다. 그렇다면 남는 명분은 코앞에 닥친 자신의 구속을 피하고 대표 권력을 지키는 것이다.

당내에서 체포동의안 가결 목소리는 사라졌다. 병상에 누워 있는 이 대표에 구속 영장을 청구한 검찰의 무도함을 규탄하는 소리만 크게 들린다. 측근에게 “죽기밖에 더 하겠느냐”는 각오를 전했다는 그가 얻은 게 정말 이것뿐이라면 과거 김대중, 김영삼의 단식 정치를 거론하는 자체가 민망하다. 최소한 그들의 단식은 암흑기에 정치를 작동케 하는 불꽃 같은 역할을 했다. 이 대표와 친위 세력은 또 한 번의 정치 위기를 돌파한 서사를 남기려는지 몰라도 정치판은 극단과 극단이 부딪치는 폐허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