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도 핵심광물 투자… 동맹국과 협력 공급망 다변화 필요” [심층기획-희토류가 패권경쟁 승패 가른다]

(하) 희토류 독립의 길 찾자

중국 ‘갈륨 수출 중단’ 사태처럼
자원의존 심할수록 대응 어려움
국제 협력 필요성 점점 높아져

미래엔 어떤 자원이 핵심될지 몰라
특정광물에 대한 무관심 태도 전환
채굴·재활용 등 투자 범위 넓혀야

핵심광물 자립, 결국 가공의 문제
미국·호주 등 제련기술 분야 약해
선도적인 기술 개발해 승부해야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취임하자마자 희토류를 포함한 핵심광물에 대한 공급망을 검토하고, 공급망 확보를 중요 과제로 꼽았다. 미국의 국가 안보와 경제에 중요한 요소로 정부 차원에서 지속해서 우선순위가 될 것이다.”

미국 워싱턴 싱크탱크 한미경제연구소(KEI)의 트로이 스탠가론 선임국장은 18일(현지시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조 바이든 행정부의 희토류 및 핵심광물 확보 노력을 의미 있게 평가했다.

 

내년 미국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희토류와 핵심광물 확보는 미 행정부의 최우선순위가 될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1월 취임 뒤 그다음 달인 2월 희토류를 포함, 반도체와 전기차용 배터리, 의약품까지 4대 품목의 공급망에 대해 100일간 점검을 시행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해 6월 발표된 25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에는 희토류 분야에서 중국 의존도를 벗어나기 위해 전 부처와 공공기관이 협력을 추진하고, 동맹국과 파트너국, 민간과 비영리기관이 참여하는 전방위 전략이 포함됐다.

바이든 행정부의 이런 노력에도 미국 내에서 여전히 희토류와 핵심광물에 대한 중국 의존도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이 올해로 10년째 국가적 과제로 추진 중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미국과 한국의 전문가들은 국가 차원에서 희토류 및 핵심광물 분야에 투자하고,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정부 차원 포괄적 전략 필요… 희토류 재정의도

워싱턴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대니얼 룬드 수석연구원은 지난 1일 펴낸 희토류 및 핵심광물 확보 관련 보고서에서 미국이 여전히 희토류와 핵심광물 확보를 위한 노력에서 중국에 뒤처져 있다고 지적했다.

룬드 연구원은 “미국 정부는 에너지부, 노동부, 내무부, 농무부, 육군, 환경보호청 등 여러 기관이 광업 규제 초안 작성에 관여하는 단편적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면서 “미국 정부는 포괄적인 광업 전략과 연방 규제를 조화롭게 이끌 수 있는 주도 기관을 지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니얼 룬드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수석연구원 "美 정부 포괄적인 광업 전략과 연방 규제를 조화롭게 이끌 수 있는 주도 기관을 지정해야"

그는 “광업 정책 개발, 관리 및 실행을 통합하면 정부 부처가 광업 부문에서 미국의 경제와 에너지, 환경 및 국가 안보에 단일하고 포괄적이며 잘 조율된 전략을 수행할 수 있다”면서 “부처 간 조율을 통해 국내외 정책 의제가 중복되거나 충돌하는 것도 방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중국의 경우 일대일로를 통해 미국의 ‘뒷마당’인 중남미 국가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면서 “미국 뒷마당에 있는 중남미 국가와의 협력은 중국에 비참할 정도로 뒤처져 있다”고 꼬집었다.

보고서는 희토류를 포함한 핵심광물의 정의를 확대하고 핵심광물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구리의 경우 미국 정부가 핵심광물로 분류하고 있지 않지만 캐나다 등 주요 국가에서 핵심광물로 지정하고 관리하고 있다고 예를 들었다.

룬드 연구원은 “미래 세대의 첨단 기술에 어떤 광물이 필요할지 알 수 없다”면서 “특정 광물에 대한 무관심은 혁신을 저해하고 향후 부족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훈 한국무역협회 공급망분석팀 팀장 "국가가 나서서 수요 보장 등의 투자를 유도해야 희토류 분야의 산업이 살아날 수 있어"

김경훈 한국무역협회 공급망분석팀 팀장은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국가가 나서서 수요 보장 등의 투자를 유도해야 이 분야의 산업이 살아날 수 있다”면서 “희토류 및 핵심광물 분야가 국가 안보와 연결된 만큼 국가가 옥석을 잘 가려서 어떤 분야에 지원해야 할지 잘 판단해야 한다”고 전했다.

사공목 산업연구원(KIET) 연구위원은 “우선 한국 내에서 개발할 수 있는 투자를 늘려야 한다”며 “국가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평가해야 하고, 경제성 평가를 국가가 나서서 주도적으로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사공목 연구위원은 “일본은 (국가 차원에서) 전략적 자율성, 전략적 불가결성을 강조하며 희토류 자원 확보에 오래전부터 공을 들였다”면서 “우리도 일본처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공목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한국은 IPEF를 비롯 동맹국 및 우방국과 협력해 공급망 다변화에 노력해야 해"

◆희토류 비용 상승 대비 장기 투자 이뤄져야

희토류 및 핵심광물에 대한 수요가 갈수록 높아지고, 그에 따른 비용이 확대될 수 있는 만큼 그에 대비해 정부 차원의 투자가 광범위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탠가론 국장은 “전 세계적으로 희토류 및 핵심광물 채굴 및 처리 용량뿐만 아니라 재활용 분야에도 상당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희토류 광물에 대한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일본은 10년 전부터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이제 겨우 (의존도를) 50% 수준으로 낮췄다”고 말했다. 희토류 및 핵심광물 분야에 대한 투자를 서둘러야 하고, 규모도 커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트로이 스탠가론 한미경제연구소(KEI) 선임국장 "한국은 파트너 및 미국과 협력해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그 밖의 재생 기술과 방위 산업에 중요한 광물들을 중국이 아닌 제3국에서의 가공 능력을 개발해야"

스탠가론 국장은 이어 “향후 (희토류 및 핵심광물에 대한) 훨씬 더 많은 수요가 있을 것이고, 미국과 동맹국은 서로의 정책을 훼손하지 않도록 조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스탠가론 국장은 한국의 희토류 및 핵심광물 자립에 대해서는 “최근 중국이 수출 제한 조치를 내린 갈륨의 경우 호주와 인도태평양 등 여러 지역에 풍부하게 매장돼 있고, 호주의 경우 리튬의 세계 최대 공급원”이라며 “결국은 가공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은 파트너 및 미국과 협력해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그 밖의 재생 기술과 방위 산업에 중요한 광물들을 중국이 아닌 제3국에서 가공하는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리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자원활용연구본부 순환자원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미국과 호주 등은 제련 기술이 약하다”면서 “한국은 미국이나 호주, 중국 등이 아직 선점하지 못한 제련 기술을 발 빠르게 개발해서 기술을 바탕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리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자원활용 연구본부 순환자원연구센터 선임연구원 "한국은 미국이나 호주, 중국 등이 아직 선점하지 못한 제련 기술을 발 빠르게 개발해서 기술을 바탕으로 승부해야"

◆핵심은 공급망 다변화… 국제 협력 집중해야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6월 몽골과 광물자원 부문 개발 및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몽골은 지하자원이 풍부해 광산(Mine)과 몽골(Mongolia)을 합성한 ‘마인골리아(Minegolia)’라고도 불리지만, 실제 지하자원 규모는 지질조사 등의 부족으로 그 규모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2009년 조사에서 희토류를 포함한 핵심광물이 전 세계 매장량의 16.8%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고, 그 수치 역시 몽골 국토의 4분의 1 수준의 지질조사를 토대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행정부는 몽골의 희토류, 핵심광물의 채굴, 탐사, 추출, 생산에 대한 ‘창의적 해결책’을 찾겠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1일에는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희토류 매장량이 두 번째로 많은 베트남을 국빈 방문해 희토류 공급 협력 강화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아프리카 국가의 희토류 공동 개발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도 알려졌다.

몽골과 베트남 외에도 희토류 및 핵심광물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들이 대체 공급처로 부상하고 있다.

CSIS 보고서 등에 따르면 세계 구리 생산을 주도하고 있는 칠레와 페루, 은을 생산하는 멕시코, 구리와 금 생산을 늘리고 있는 콜롬비아가 주목받는다.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 칠레는 현재 전 세계 리튬 매장량의 약 절반을 보유하고 있고, 브라질은 희토류 매장량이 2100만t에 달해 베트남에 이어 러시아와 함께 전 세계 세 번째 희토류 매장국으로 꼽힌다.

국내 전문가들은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국제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경훈 팀장은 “미국이 우방 동맹국들과 공급망을 구축하고자 할 때 국제 협력 차원에서 우리가 참여하는 방식이 가능성이 높다”면서 “광산에 지분 참여 형식으로 희토류를 직접적으로 받을 수 있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사공목 연구위원은 “미국이 주도하고 한국 등이 참여하는 다자 경제협력체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등을 포함, 동맹국 및 우방국과 협력해 공급망 다변화에 노력해야 한다”면서 “특정국에 의존을 줄여야 한다. 어떤 물질이든 한 국가에 80% 이상을 의존한다면 정치적 문제 또는 자연재해 등이 발생했을 때 대처가 불가능하다”고 경고했다.

정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정부는 중국을 중심으로 특정국에 의존도가 너무 높기 때문에 공급망을 다원화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