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유명무실해진 9·19 군사합의, 더 존속시킬 이유 있나

5돌을 맞은 9·19 남북군사합의는 2018년 9월 18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명한 평양공동선언의 부속합의서로 ‘지상과 해상·공중 등 모든 공간에서 무력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한다’는 게 골자다. 한때 남북 간 군사충돌을 방지하는 안전핀으로 여겨졌지만 북한이 반복적으로 위반하면서 유명무실해졌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022국방백서에 따르면 9·19 군사합의 체결 이후 작년 말까지 북한이 명시적으로 합의를 위반한 사례는 17건에 달한다. 서명 1년 후인 2019년 11월 김정은 위원장이 연평도 도발 9주년을 맞아 서해 NLL(북방한계선)에서 북쪽으로 불과 18㎞ 떨어진 창린도 해안포부대를 방문해 “한번 사격해 보라”며 직접 지시하자 북한군은 즉시 사격을 가했다. 2020년 5월에는 중부전선에서 우리 측 감시초소(GP)에 총격을 가했고, 한 달 후에는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 삼으며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같은 해 9월에는 서해 북측 해역에서 발견된 우리 국민을 총격으로 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웠다. 지난 해 12월에는 무인기 5대를 침투시켜 서울 대통령실 인근과 경기도 상공을 휘젓고 돌아갔다.



9·19 합의의 핵심은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조속히 이뤄나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핵개발에 박차를 가해왔다. 2021년 1월 노동당 대회에선 극초음속미사일 등 5대 과업을 실현하겠다며 최근까지 다종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무력시위를 벌였고, 지난해 9월에는 핵사용 선제공격 가능성을 명시한 법까지 만들었다. 북한이 언제 무슨 짓을 할지 알 수가 없는 지경이다.

북한이 준수할 의지가 없는데 9·19 합의를 더 존속시킬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미 “북한이 우리 영토를 침범하는 도발을 일으키면 9·19 군사합의 효력정지를 검토하라”고 했다. 더구나 9·19 합의 당시 문재인정부 협상단이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고 우리에게 크게 불리한데도 합의해준 의혹까지 제기됐다. 9·19 합의 효력 중지를 먼저 거론하는 건 도발 명분을 줄 수 있다. 그렇지만 북한의 도발이 일상화하고 심지어 한반도를 전술핵 사정권에 둔 상황이라면 파기를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