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비 등으로 신체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환자가 뇌 속에 이식한 컴퓨터 칩을 통해 기계를 자유롭게 조작하는 기술은 ‘과학의 축복’ 중 하나로 공상과학(SF) 영화나 소설 속에서 흔하게 묘사돼 왔다. 오랫동안 꿈으로만 여겨 온 이 기술의 현실화를 위한 첫걸음이 시작됐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뇌신경과학 스타트업 ‘뉴럴링크’가 인간의 뇌에 컴퓨터 칩을 이식하기 위한 임상시험 참가자를 모집하기 시작했다고 영국 가디언, 로이터통신 등이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뉴럴링크는 이날 블로그 공지를 통해 첫 임상에 대한 심사위원회 승인을 받았다면서 경추 척수 부상이나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루게릭병) 등으로 인한 사지 마비 환자가 참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 5월 미 식품의약국(FDA)에서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임상을 승인받은 지 약 4개월 만의 임상 착수다.
로이터통신은 해당 분야 전문가들의 발언을 인용해 “BCI 장치를 사람에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입증되더라도, 뉴럴링크가 이에 대한 상업적 허가를 확보하는 데에는 10년 넘게 걸릴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기술의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그 기간은 더 길어질 수 있다. BBC는 “뇌와 관련한 모든 수술은 신체적 손상과 숙주의 거부 반응이라는 내재적 위험을 수반한다”면서 “FDA가 인체 실험을 승인했다는 사실은 뉴럴링크가 (안전과 관련한) 몇 가지 과제를 극복했음을 의미할 수 있다”고 평했다. 매체는 “더 심각한 우려는 우리가 이제 막 이해하기 시작한 매우 복잡한 기관인 인간의 뇌에서 이러한 장치가 작동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장기적인 결과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 기술이 인간의 몸에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입증된 것이 없다는 뜻이다.
장기간 임상 과정에서 발생할 여러 부작용으로 인해 기술의 현실화 자체가 암초에 부딪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신기술의 윤곽이 드러날수록 윤리·규제 논쟁도 더불어 증폭될 공산이 크다.
BBC는 “이 기술은 인간이 자연스러운 상태 이상으로 두뇌 능력을 증강 또는 향상하는 것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면서 “이는 윤리적 논란을 야기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해당 분야에서의 면밀한 규제가 요구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럴링크는 이미 동물을 이용한 생체실험과 관련한 윤리 문제에 부닥친 상태다. 지난해 12월 로이터는 이 회사가 동물복지법 위반 등 혐의로 미국 농무부의 조사를 받는 중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보도에는 따르면 뉴럴링크의 기술 개발 과정에서 2018년 이후 지금까지 양, 돼지, 원숭이를 포함해 약 1500마리의 동물이 희생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머스크 CEO가 과도한 실험을 강요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는데, 로이터는 자체 입수한 내부 문건과 전·현직 직원 20여명의 증언을 토대로 “기술 개발을 가속하라는 머스크의 압박이 잦은 실험 실패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뉴럴링크 측은 “불가피한 경우에만 동물실험을 했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말 열린 간담회에서 머스크 CEO는 “가설 검증이 아닌 장치 실행 여부를 최종적으로 확인할 때만 (동물실험을) 진행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