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공장·한부모… “사회 이면 이야기, 아이들도 안답니다”

그림책 ‘코지 시리즈’ 작가 허정윤

자전적 경험 녹인 ‘아빠를 빌려줘’ 등
신랄한 메시지로 사회적 이슈 다뤄
코딱지 모험 ‘코지’ 2024년 애니 상영

“(어른들이) 숨긴다고 해서 아이들이 모르지 않고, 오히려 숨어서 (몰래) 봐요. (어려운 주제라도) 담백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더 강하게 전달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림책 작가 허정윤(43)은 20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그림책을 꾸준히 펴낸 이유에 대해 “어렵고 힘든 주제지만 아이들도 사회의 일원이기 때문에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허정윤 작가는 20일 “어린이는 모호하거나 비논리적인 것들에도 너그럽기 때문에 어린이의 감각을 활짝 열어 주는 사소한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본인 제공

동물권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우리 여기 있어요, 동물원’, 강아지 공장의 실태를 보여 주는 ‘63일’, 환경 문제를 다룬 ‘투명 나무’, 난민을 주제로 한 ‘손을 내밀었다’ 등은 아동용 그림책에서 잘 다루지 않는 사회적 이슈들을 다루고 있다. ‘손을 내밀었다’는 지난달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뽑은 ‘올해의 책’(유·아동·청소년 부문)으로 선정됐다.



대부분의 그림책이 장애, 차별, 전쟁 등의 주제를 다루더라도 간접적이거나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것과 달리 허 작가는 때로 직설적으로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 여기 있어요, 동물원’에서 “연애만 하고 새끼는 갖지 마세요. 내 고통을 그대로 물려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라는 주인공인 사자 ‘레오’의 말은 어른조차 움찔하게 할 만큼 강렬하고 신랄하게 다가온다.

허 작가는 “아이들이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알고 물어본다”면서 “곤란하다고 회피하기보다 그림책을 통해 건강하게 알려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 책은 당시 대부분의 출판사에서 거절당해 빛을 보지 못할 뻔 했다. 그러나 뒤늦게 한 출판사에서 출간을 제안했고, 이후 동물권이 사회적 관심을 받으면서 초등학교에서도 가르치고 있다.

‘아빠를 빌려줘’도 허 작가의 실제 이야기를 그대로 녹였다. 그가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고, 아빠와 야구하는 게 소원이라는 동생을 위해 아랫집에 찾아가 아빠를 빌려 달라고 했다. 너그러운 아래층 아저씨는 작가의 동생과 함께 야구를 해 줬다.

허 작가는 사실 ‘코딱지 코지’ 시리즈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주인공 ‘서영이’의 콧구멍에 살던 코딱지 코지가 콧구멍 밖으로 탈출하면서 벌어지는 모험을 담았다.

허 작가는 “이 책 역시 아빠에 대한 그리움으로 썼다. 아빠가 코를 후비며 장난치셨던 모습을 떠올리며 만들었다”면서 “무명처럼 지내다가 2016년 코지 시리즈를 통해 이름을 많이 알리게 돼 저에겐 선물 같은 책”이라고 말했다.

코지 시리즈는 현재 애니메이션과 멀티미디어 작업도 진행 중이며 내년에 상영될 예정이다. 캐릭터 지식재산권(IP)으로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 핵심 콘텐츠를 다양하게 가공해 많은 채널로 확산하는 것)를 적극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허 작가는 “그림책 작가로는 생계가 안 돼서 점토 사업을 시작했고, 그 점토로 코지를 직접 입체 모형으로 만들어 삽화로 쓰게 됐다”며 “IP를 확장해 나가기 위해 아예 법인도 만들었다”고 말했다.

앞으로 코지뿐 아니라 코지의 친구 캐릭터들도 차례로 선보여 코지 세계관을 확장해 갈 계획이다. 그는 “하찮고 볼품없어 보이는 캐릭터들이 난관을 딛고 일어나 당당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종이책에 머물지 않고 장르를 허물어 어린이들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재미있게 문학을 접할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