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 4강신화의 감격이 채 가시기 전인 그해 9월.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 종합스포츠대회인 부산아시안게임에 북한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지만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떨어졌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소속 44개 회원이 모두 참가한 첫 대회로 기록된 부산아시안게임의 백미는 북한의 ‘미녀응원단’이었다. 부산 다대포항에 정박한 만경봉호를 숙소로 쓰던 북한 응원단 280명은 이슈메이커였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국민의 관심사였고, 이들이 등장하는 경기장마다 매진행렬이 이어졌다. 2005 인천육상선수권대회 응원단 100명 안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아내 리설주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북한의 인공기는 ‘뜨거운 감자’였다. 금기의 상징으로 불리던 인공기가 남한에서 처음 게양된 것도 부산아시안게임이다. 개막전부터 인공기 게양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인공기를 게양·사용한 10여명이 구속되기도 했다. 2003년 8월 대구유니버시아드 대회 때는 논란이 극에 달했다. 일부 보수단체들이 인공기와 김정일의 초상화를 찢고 불태우자 북한이 대회 불참을 시사하기에 이르렀다. 우여곡절 끝에 선수단·응원단에게만 사용을 허가하고, 조직위원회나 선수촌 등 일부 지역에서만 게양을 허가하는 선에서 절충됐지만 북한을 실체적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국가보안법이 빚어낸 진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