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제르 군부 "프랑스 항공기 비행 금지"… 백기 든 마크롱

"니제르와 군사협력 중단하고 철군할 것" 발표
아프리카에서 쫓겨나는 프랑스… 영향력 급감

아프리카 니제르에서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가 프랑스 군용기 등의 자국 영공 비행 금지를 선포했다. 그 직후 프랑스 정부는 ‘니제르에서 군대를 철수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니제르에는 사헬 지역의 테러리스트 소탕을 명분으로 1500명 규모의 프랑스군이 주둔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프랑스의 영향력 감소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란 평가가 나온다.

 

24일(현지시간) 영국 BBC에 따르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자국 방송사 TF1 및 프랑스2에 출연해 니제르에서 철군키로 한 결정을 공개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니제르와의 군사협력은 끝났다”며 “앞으로 몇 달 안에 프랑스군이 니제르를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프랑스는 니제르 주재 대사도 철수시키기로 결정했다”며 “앞으로 몇 시간 안에 우리 대사와 몇몇 외교관들이 프랑스로 돌아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화면 속)이 24일(현지시간) TF1 방송에 출연해 ‘니제르에서 철군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AFP연합뉴스

니제르에서는 지난 7월 26일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이 축출됐다. 얼마 전까지 바줌 대통령의 경호실장 역할을 하던 압두라흐마네 티아니 장군이 군사정권 수립을 선언했다. 프랑스를 비롯한 국제사회는 즉각 쿠데타 무효를 선언하고 바줌 대통령의 복귀를 촉구했다. 특히 과거 니제르를 식민지로 지배했던 프랑스는 “바줌 대통령이 권좌로 돌아오지 않으면 니제르에 대한 경제원조를 모두 중단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러자 니제르 군부는 실뱅 이테 주(駐)니제르 프랑스 대사한테 추방령을 내렸다. 테러 근절을 명분 삼아 니제르에 주둔하는 프랑스군의 즉각적인 철수도 요구했다. 군부를 지지하는 니제르 시민들은 연일 프랑스 대사관 및 프랑스군 기지 앞에서 대규모 반(反)프랑스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프랑스를 제국주의 세력으로 규정하며 “여전히 니제르를 식민지처럼 대한다”고 맹비난했다.

 

이테 대사를 비롯한 프랑스 외교관들은 지난 약 1개월 동안 니제르 군부에 의해 인질과 같은 처우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얼마 전 마크롱 대통령은 ”니제르의 우리 외교관들이 대사관에 숨어서 군이 주는 배급 음식으로 겨우 버티는 상황”이라고 전한 바 있다.

 

BBC는 프랑스가 니제르를 포기하기로 한 결정의 배경에 이날 니제르 군부가 내린 비행 금지령이 있다고 분석했다. BBC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의 발표가 있기 불과 몇 시간 전에 니제르 군부는 “우리 상공에서 프랑스 정부 항공기와 에어프랑스 소속 항공기, 기타 프랑스가 전세를 낸 모든 항공기의 비행을 금지한다”고 전격 선언했다. 프랑스 군용기는 물론 민항기의 경우도 니제르 영공에 진입하는 경우 격추하겠다는 협박으로 풀이된다. 에어프랑스는 이날 AFP 통신을 통해 “우리는 현재 니제르 상공을 비행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니제르에 있는 프랑스군 기지의 정비 요원들이 미라주 2000 전투기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몇 달 안에 니제르에 주둔한 프랑스군을 모두 철수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AP연합뉴스

AP 통신은 프랑스 정부의 이번 철군 결정이 사헬 지역에서 프랑스의 대(對)테러 작전 수행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프랑스는 과거 자국 식민지였던 부르키나파소, 차드, 말리, 모리타니, 니제르 등 사헬 지역 국가에 한때 5000명 넘는 규모의 군대를 주둔시키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말리, 부르키나파소 그리고 최근에는 니제르까지 군부 쿠데타로 친(親)프랑스 정권이 줄줄이 무너지며 영향력이 급격히 감소하는 중이다. 일각에선 ‘프랑스가 아프리카에서 쫓겨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