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타워] ‘코끼리’ 연금개혁, 이번엔 옮겨야

재정안정·형평성·적절성 어떻게 풀어갈지 주목

10월은 국민연금 개혁 방향과 세부 내용에 대한 정부 입장이 나오는 달이다. 보건복지부는 다음달 중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5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연금개혁 등 3대 과제를 제시한 지 1년 6개월 만이다. 정부가 지속가능성(재정안정화)과 공정성(세대·계층 간 형평성), 노후소득 제고(적절성)라는 고차방정식을 어떻게 풀어갈지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가 이달 1일 공청회에서 내놓은 ‘제도개선 방안’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2%, 15%, 18%로 올리고 연금 지급 개시 연령을 65세(2033년)에서 66세, 67세, 68세로 늦추며 연평균 4%대인 기금투자수익률을 0.5%포인트, 1%포인트 끌어올리는 경우를 조합한 18개 시나리오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송민섭 사회부 선임기자

당장 ‘반쪽짜리’ 개편안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재정안정화 방안에 방점을 찍어서다. 2021년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39.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이다. 노인 10명 중 4명은 중위소득의 절반(약 91만4000원) 미만의 돈으로 근근이 생계를 꾸리고 있다. 경제발전 주역이자 생활고에 시달리는 ‘당장의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소득대체율(31.2%)을 상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상당하다.



물론 지속가능한 국민연금 운용을 위한 재정계산위 고심이 느껴지지 않는 바는 아니다. 연금개혁의 양대 축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조정이다. 연금개혁을 공언한 역대 정권 모두 25년간 그대로인 보험료를 ‘더 내고’ 용돈 수준에 불과한 연금 수령액을 ‘더 받는’ 안을 저울질했다. 하지만 저출생·고령화 시대 ‘더 내고 더 받는’ 개편안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올해 노인부양비(생산연령인구 100명당 부양해야 하는 고령인구)는 26.1명. 2035년에는 48.6명에 달한 뒤 2065년엔 연금 내는 인구보다 받는 인구가 더 많아질 전망이다.

소득대체율 상향의 더 큰 문제는 작금의 노인빈곤 완화 부담을 젊은층에 떠넘기는 세대 간 형평성 논란이 일 수 있다는 점이다. 3040세대의 경우 오랜 경기침체, 고물가 등으로 실질소득이 감소한 상황인데, 그간 사회·경제적 혜택을 누릴 대로 누린 5060세대가 은퇴 이후에도 더 많은 연금을 받는다고 하면 차라리 국민연금을 ‘임의가입’ 방식으로 바꾸라고 요구할지 모른다. 계층 간 연금 양극화 문제도 커질 수 있다. 현행 연금제도는 오래 가입할수록 더 많은 연금을 받는 구조인데, 소득 1분위와 10분위 간 수령액 차이가 더 벌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경제학계에 통용되는 ‘틴베르헌의 법칙’이 있다. 기준금리 조정으로 물가안정과 고용안정을 모두 달성할 수 없듯이 어떤 정책 목표를 달성하려면 같은 수의 정책 수단을 내놔야 한다는 것이다. 연금개혁은 세대·계층·노사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사안이다. 보험료율 또는 소득대체율 조정만으로 국민 모두를 만족시키는 ‘마법의 숫자’는 없다.

연금개혁 관련해 정부는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조정 같은 모수개혁에 집중한다고 한다. 정부는 일단 재정안정과 소득보장 두 측면에서 최대공약수를 찾아야 한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기대여명과 재정여건, 임금수준 등과 연동하는 자동안정장치 도입을 검토하면 국민 불안이 조금은 가실 것 같다. 무엇보다 정부가 목표로 하는 연금개혁의 방향성과 실천방안을 제시하고 국민 이해 및 동의를 구한다면 연금개혁이라는 대표적인 ‘회색 코끼리’는 예상보다 쉽게 옮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