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판소리’가 없다니…판소리 옷을 입힌 창작가무극 ‘순신’ 11월 초연

“8년 전 이자람과 함께 이순신을 소재로 한 뮤지컬 제안을 받은 적 있는데 무산됐어요. (마침) 그때 뮤지컬 ‘서편제’를 할 때인데, ‘적벽대전’을 담아낸 (판소리) ‘적벽가’가 너무 좋았어요. 순간 ‘이순신(장군 이야기)에 대한 판소리가 없는 게 말이 되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창작가무극 ‘순신’ 창작진이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오필영 무대디자이너, 김선미 작가, 이자람 작창, 이지나 연출, 이유리 서울예술단 단장 겸 예술감독, 김문정 음악감독, 정보경·심새인 안무가. 연합뉴스

‘난중일기’에 기록된 이순신 장군의 꿈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순신’을 11월에 초연하는 이지나 연출이 8년 만에 꿈을 이루게 됐다. 서울예술단에서 ‘순신’을 제안받자마자 소리꾼 이자람에게 연락해 판소리 작창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순신’은 창작가무극이지만 음악과 무용뿐 아니라 판소리, 첨단기술을 적용한 무대미술 등 여러 장르와 기술이 합쳐진 ‘총체극’과 다름없다. 

 

이를 위해 서울예술단은 이지나 연출과 이자람, 김선미 작가, 김문정 음악감독, 오필영 무대 디자이너, 안무가 정보경, 심새인 등 이름난 창작진을 한데 모았다. 

 

이순신 장군이 남긴 ‘난중일기’를 보면 꿈을 많이 꾼 사람으로 나온다. 여기에 착안해 ‘순신’은 장군이 꾼 40여개의 꿈 이야기를 엮어 역사적인 사건과 교차 편집한다. 용맹한 장수이자 충직한 신하이며 효심 깊은 아들이자 가슴 아픈 아버지로 끊임없이 고민하는 인간 이순신의 삶과 고뇌를 그린다.

총체극을 표방한 ‘순신’의 이지나 연출. 연합뉴스

이지나 연출은 최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순신이 초인적으로 이겨낸 고통에 초점을 뒀다”고 연출 의도를 설명했다. “이순신의 일생을 나열하는 데는 관심이 없어요. 그건 50부작 드라마에서 하면 되죠. 고통의 극한이 인간을 얼마나 강하게 하는지, 그 고통 속에서 어떻게 조선을 구할 수 있었는지 등 그의 내면을 신체(무용)와 판소리가 가진 애절함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말하자면 ‘순신’은 무용과 판소리가 만난 뮤지컬입니다.”

 

꿈 테마는 8개로 구성되며, 무용수가 이순신 역할을 맡아 움직임과 춤으로 그의 내면을 표현한다. 5명으로 구성된 코러스는 이순신의 분신으로 그의 심리를 대사와 노래, 움직임으로 설명한다.

 

이 연출은 “무대예술로 어떻게 장르적 차별화를 줄까 고민했다. 영화처럼 CG(컴퓨터그래픽)나 편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순신’만의 힘을 찾으려 했다”며 “순신의 고뇌를 육체로 표현하며, 대사는 몇 마디 되지 않는다. 대사나 노래는 무인이나 코러스, 순신의 아들이나 어머니, 선조 등이 표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순신’ 공동 극본과 작창을 맡은 소리꾼 이자람. 연합뉴스

임진왜란 발발부터 한산·명량·노량대첩 등 주요 해전 장면은 고수와 함께하는 전통적인 판소리로 담아낸다. 이자람이 작창을 맡았다. 전쟁 장면을 정통 판소리로 재구성한 뒤 현대적인 소리로 교정하는 과정을 거쳐 만들고 있다. 이자람은 “임진왜란과 한산대첩까지 멋지게 곡이 나왔다. 각 전쟁의 콘셉트가 다른데, 한산이나 명량은 ‘적벽대전’을 참고한 게 맞다”며 “그에 견줄 수 있는 대전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완성해가고 있다. 한산대첩을 표현한 곡은 멋지게 나왔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난세의 영웅이자 충직한 신하였던 이순신 역은 무용수 형남희가 맡는다. 형남희는 몸으로 고통을 표현하는 역할에 집중하고 인물의 내면은 서술자인 무인과 코러스가 소리로 표현한다. 이순신의 막내아들 ‘면’(권성찬)과 여자라는 성별을 숨기고 왜란에 참전한 ‘하연’(송문선)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도 관심을 끈다. 하연은 작품 속 유일한 허구 인물이다. 

 

뮤지컬 ‘웃는 남자’, ‘데스노트’ 등에서 독창적인 무대 연출을 선보인 오필영 디자이너는 “기존 뮤지컬이나 연극, 무용극에서 시도하지 않은 독창적인 작업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이유리 서울예술단 단장 겸 예술감독은 “전통을 기반으로 미래지향적인 장르로 계속 실험하는 것이 서울예술단의 예술적 정체성”이라며 ”창작진의 새로운 도전으로 만들어질 이번 신작이 공연에 새로운 양식의 단서를 마련해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공연은 11월 7∼26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