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SF영화가 온다… ‘크리에이터’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엄형준의 씬세계]

AI 토벌하는 인간…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AI
할리우드 영화의 ‘미국 제일주의’ 공식 깨트려
새로운 이야기·배우·제작방식… 짐머 음악 더해
흥미로운 스토리에 철학적 주제 자연스레 녹여

주목해야 할 SF영화가 연휴 말미인 3일 개봉한다. 바로 가렛 에드워즈 감독의 ‘크리에이터’다. 동양 문화에 심취한 감독은 그간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 공식을 깨트리며,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서도 상업 영화의 덕목인 재미와 감동도 놓치지 않았다.

 

‘크리에이터’는 인공지능(AI)과 인간의 싸움을 그린다. 이렇게만 설명해 놓고 보면 진부해 보인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2001년 선보인 철학적 영화 ‘Ai’ 후 AI는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됐고, AI가 인간과 싸움을 벌일 것이라는 가정은 이미 1984년 작 ‘터미네이터’에 등장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새로운 건 인간과 AI의 전쟁을 소재로 다루면서도 AI를 절대 악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악한 건 인간일 수도 있다.

 

영화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AI가 핵폭탄을 터뜨리며 시작된다. AI가 배신했다고 믿는 미국은 AI를 절멸시키기 위해 전쟁을 선언한다. 대부분의 서구 국가에선 AI가 사라지고, 이제 남은 건 동아시아 일부 국가뿐이다. 미국은 특수부대를 보내 AI 근원인 ‘창조자’를 죽이려 하고, 전세를 바꿀 수 있는 그가 만든 강력한 무기를 파괴하려 한다. ‘창조자’에 접근하기 위해 동아시아에 스파이로 침투해 살아가던 중, 미군의 공격으로 그곳에서 만나 결혼한 아내와 배 속의 아이를 잃은 특수부대원 ‘조슈아’는 아내의 흔적을 찾기 위해 이 강력한 무기를 파괴하는 작전에 참여하고, 아이 모습의 AI 로봇 ‘알피’가 그 무기라는 사실에 당황한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모습의 AI 로봇은 인간과 같은 또 하나의 종족일까 아니면 프로그래밍이 된 인형일 뿐일까.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AI가 인간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로봇도, 총도 필요 없다”며 “이야기만 만들고, 인간이 이를 믿게 해 서로를 쏘게 하면 된다”고 했다. 유발 하라리는 AI가 인간처럼 언어를 구사하고, 이를 통해 이야기를 창조하게 되면 사피엔스, 즉 현생인류의 우월 종 지위가 흔들릴 수 있다고 봤다. 영화 속에서 인간과 AI를 구별하기는 힘들고, AI라는 존재에 대한 인간의 고민은 한층 깊어진다.

 

에드워즈 감독은 한국 언론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2018년부터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면서 “당시는 AI가 먼 미래의 일 같았고, 스크립트를 짤 때는 ‘나와 다르기 때문에 적’이라고 보는 은유로 AI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배경 시점을 설정한다면 2070년 정도다. 그때는 내가 죽었을 테니까 영화 내용이 틀려도 바보처럼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면서 “하지만 이젠 배경이 2023년이 되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AI가 우리 실생활에 들어와 놀라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알피’가 아이라는 설정은 일본 만화 ‘아들을 동반한 검객’에서 따왔다. 아이를 죽이면 세계를 구하지만, 주인공은 악역보다 더 나쁜 사람이 되고 마는 딜레마를 담고 있다. 

 

‘크리에이터’는 기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전쟁·SF 영화의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성조기가 나부끼거나 승리의 빅토리를 외치는 일은 없다. 영화엔 글로벌 리더 국가로서 미국의 전쟁이 숭고한 행위가 아니라 파괴의 악행일 수도 있다는, 반전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감독의 설명대로라면 AI는 미국 외의 다른 국가나 민족으로도 치환될 수 있는데, 현시점에선 은유가 아닌 AI 자체와 인간의 전쟁으로 받아들여도 설정이 이상하지 않다.

 

시나리오만큼이나 배우들도 이 영화를 새롭게 만드는 요소다. 알피 역을 맡은 8살의 아역 배우 매들린 유나 보일스는 성인 못지않은 탁월한 연기력을 선보인다.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그의 천진한 웃음에 반하지 않긴 힘들다. 보일스 외에도 존 데이비드 워싱턴, 켄 와타나베, 젬마 찬 등이 영화에 출연한다. 이들은 이전 작품을 통해 연기력을 평가받은 배우들이지만, 할리우드의 대표 배우로 불리거나 소위 인기 스타는 아니다. 이들의 새로운 마스크와 진부하지 않은 연기는 영화를 더욱 새롭게 하는 요소다. 

 

음악 역시 빼어나다. 에드워즈 감독은 “음악을 듣고 바로 알아차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바로 ‘다크 나이트’, ‘인터스텔라’, ‘덩케르크’, ‘듄’ 등의 음악을 담당한 한스 짐머가 음악을 맡았다.

 

영화는 제작방식에서도 다름을 추구했다. 에드워즈 감독은 블루스크린이 아닌 현실에서 영화를 촬영한 후, 특수효과를 덧씌우는 방식으로 영화를 완성했다. 그래서인지 영화의 장면은 사실감이 풍부하고, 때론 장대하다. 장면에 대한 정확한 설계가 돼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작업이다. 감독은 이러한 방식을 통해 제작비를 아낄 수 있었다고 한다. 절대적 금액으로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지만, 요즘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의 제작비를 생각하면 많다고도 할 수 없는 8600만달러가 이 영화를 만드는 데 투입됐다.

 

에드워즈 감독은 “저의 첫 장편 저예산 독립영화가 한국에 가기도 했고, 그것을 통해 고질라 연출의 기회, 스타워즈 연출의 기회를 얻기도 했다”면서 “독립영화를 통해 저예산이지만 창조의 자유로움을 다질 수 있었던 경험과 이에 블록버스터를 만든 경험의 장점이 모여, 대서사적이면서도 창조적 예술성이 합쳐진 결정체를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한국과의 인연과 이번 영화에 대해 소개했다.

 

크리에이터는 복잡하거나 과도하게 철학적 주제를 앞세우지 않고, 알피와 조슈아의 흥미롭고 긴장감 넘치는 여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사색의 기회를 제공한다. SF 팬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는, 올해 놓치지 말아야 할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