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신원식은 김관진을 넘어설까

‘꼿꼿장수’ 김장수, ‘무장 전형’ 김관진
민주화 이후 국민 뇌리에 각인된 별
신 후보자도 안보 수장으로 변신 필요
구설과 잡음 부르는 과한 표현 삼가야

현대사에는 많은 별이 명멸했다. 군사독재 시절을 빼고서 민주화 이후 국민들 뇌리에 각인된 이는 누가 있을까. 김장수 전 국방부 장관(육사 27기)은 2007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지도 않은 채 악수했다. 그러고는 ‘꼿꼿장수’로 불렸다. 실제론 온화하고 합리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거친 언사는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들었다. 2008년 정치권에 입성해서도 그랬다. 노무현정부를 거쳐 박근혜정부에서 초대 국가안보실장과 주중대사까지 지낸 배경이다.

지난 5월 대통령 직속 국방혁신위원회 위원으로 복귀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육사 28기)도 군인의 사표(師表)로 거론된다. 그는 이명박정부 때인 2010년 3월 북한의 천안함 폭침이 있고 나서 발탁됐다. 북한과의 대치가 엄혹했다. 그는 부하들에게 북한 도발 시 ‘선(先) 조치, 후(後) 보고’, “적의 도발에 대해 쏠까요 말까요 생각하지 말고 대응 사격하라”고 주문하며 대북 강경 기조를 유지했다. 무장의 전형으로 북한이 꽤나 불편해했다. 덕택에 박근혜정부에서도 국방부 장관직을 수행하다 청와대 안보실장까지 떠맡았다. 그는 과묵하지만 지휘지침이 명확했다. 부하들의 웬만한 잘못은 눈감아 주는 덕장의 면모도 갖췄다. 2012년 대선과 총선을 전후해 군 사이버사령부에 댓글공작 등을 지시한 혐의로 기소돼 얼마전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가 아직 풀지 못한 숙제다.

박병진 논설위원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육사 37기). 현역 시절(소령) 육군대학 정규과정(1년)을 수석 졸업했을 정도로 명석함이 남달랐다. 국방부 정책기획관(2011∼2012년)으로 김관진 전 장관의 눈과 귀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가 달변에 언론 친화적이라는 점만 빼면 두 사람의 대북·대적관은 동일했다. 그는 정책기획관을 거쳐 수도방위사령관,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때까지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별 넷 대장 진급이 유력했음에도 2015년 9월 군 정기인사에서 누락됐다. 2016년 전역하고는 여의도 입성을 노렸으나 이마저 실패했다. 4년 뒤 21대 총선에서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초선으로 심적 부담이 없었다고 부인하기 어렵다. 이 시기 그의 강성 행보는 두드러졌다. 평소 좌고우면하지 않는 데다 문재인정부의 안보정책이 달가울 리 없었다. 현 정부 들어서도 그대로다.



그러다 보니 정계 입문 전인 2019년 당시 보수단체 집회에서 ‘문 대통령 모가지 따는 건 시간문제’라고 하거나 같은 해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악마’에 비유한 발언도 덩달아 도마에 올랐다. 야권은 신 후보자의 이런 거친 발언과 안보관, 역사관을 문제 삼아 지명 철회를 요구한다. 아니나 다를까 4일까지인 청문보고서 채택은 야당에 의해 거부됐다. 그렇다고 지명 철회 요구가 관철되긴 어려울 듯싶다. 그의 역사관과 철학은 대한민국의 정체성 및 종북 세력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윤 대통령과 맞닿아 있다. 10일부터 국정감사 시즌이다. 퇴임 예정 장관이 국감장에 등장한 전례가 드물고, 야당 역시 시비 걸기가 애매하다. 대략 6일쯤 대통령 임명이 있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신 후보자의 최우선 과제는 북핵 해법 찾기다. 북한은 지난달 말 자신들 헌법에까지 핵 고도화를 명시했다. 첫 일성에 강력한 대북 메시지가 담겨야 한다. 논란이 된 홍범도 흉상 이전과 해병대원 사망 사건을 둘러싼 항명 사태는 좀 더 공감대 마련을 위한 시간이 있어야 한다. 초급간부를 비롯한 병력 부족 사태의 해법을 마련하고 허물어진 군 기강을 바로 세우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신 후보자는 “군대가 바뀌어야 할 것이 무엇이고, 잃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따져 보겠다. 때론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각오를 피력했다. 대화에서 그의 실무적 감각은 여전했다. 하지만 안보 수장으로 이전과는 다른 변신이 요구된다. 혹평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그러려면 구설과 잡음을 부르는 과한 표현부터 삼가야 한다. ‘김관진 키즈’였던 그가 김관진을 뛰어 넘을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