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어쩌다 ‘빈대’의 나라가 되었나…호텔·지하철·공항까지 [뉴스+]

여행 증가, 살충제 내성 증가로 빈대 창궐
5년간 전국 11%가 빈대 경험…“富와 무관”
파리시 “올림픽 앞두고 재앙…국가 나서야”
정부 “패닉 정도 아냐…추가 조치 취할 것”

‘낭만의 도시’ 프랑스 파리가 흡혈 해충 빈대로 몸살을 앓고 있다. 기차, 지하철, 여객선, 공항, 호텔, 영화관 등 공공장소에서 빈대를 목격했다는 신고가 잇따랐다. 전 세계 언론이 2024 올림픽 개최를 9개월 앞둔 파리에서 빈대가 창궐한 것을 우려하고 있다.

에펠탑. AP뉴시스

빈대는 1∼7㎜ 크기로 둥글고 납작한 모양이다. 큰 개체의 경우 얼핏 수박씨처럼 생겼다. 사람이나 동물의 피를 빨아 먹으며 사는데, 모기처럼 피를 빨 때 특정 성분의 액체를 주입하기 때문에 심한 가려움증을 유발한다. 영어로 침대벌레(bed bug)로 불리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집안에서는 주로 침대 이음새에 숨어 있다가 어두운 밤이 되면 나와 활동한다. 번식력도 매우 강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빈대가 모기나 벼룩처럼 질병을 옮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일부 사람들은 빈대가 주입하는 물질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으며 이 경우 치료가 필요하다.

 

한국에도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 ‘빈대 붙다’ 등의 속담이나 표현이 생길 정도로 빈대가 흔했다. 하지만 정부 차원의 방역이 강화되고 주거환경이 현대화되면서 1990년대부터는 거의 볼 수 없게 됐다.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어쩌다 빈대가 창궐하게 됐을까.

 

사실 프랑스의 빈대 문제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미국 타임지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빈대는 1950년대에 사실상 사라졌다가 1990년대부터 다시 급증하기 시작했다. 세계 여행이 일반화되고 프랑스가 여행 대국으로 떠오르면서 해외로부터의 빈대 유입이 늘었기 때문이다.

 

이후 빈대 출몰 정도는 잦아졌다가 줄어들기를 반복했는데 최근 3년 내 심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식품, 환경 및 직업 보건 안전청(ANSES)은 빈대 확산의 원인으로 최근 몇 년 동안 세계 여행의 증가와 살충제에 대한 빈대의 내성 증가를 지목했다.

프랑스 파리 지하철 안에서 발견된 빈대. 트위터 영상 캡처

ANSES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2년까지 프랑스 가정의 11%가 빈대를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빈대는 ‘가난’의 상징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부(富)의 정도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도 밝혀졌다.

 

실제로 빈대는 여러 선진국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빈대가 최근 미국, 캐나다, 영국 및 기타 유럽 지역에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고 밝혔다.

 

프랑스 정부는 3년 전 빈대 정보 웹사이트와 신고 전화 핫라인을 구축하는 등 빈대 퇴치를 위한 노력을 강화했다. 그런데도 지난 8월 말부터 빈대 수가 급증했다. 가정집 침대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공장소에서 빈대가 출몰하고 있다. 최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파리 지하철, 고속 열차, 영화관, 샤를 드골 공항 등에서도 빈대가 발견됐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에마뉘엘 그레구아르 파리 부시장은 정부에 서한을 보내 “파리시가 내년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국가가 이 재앙에 맞서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는 혼란을 우려하며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오렐리앙 루소 프랑스 보건부 장관은 “프랑스가 빈대에 침략 당한 건 아니다”라면서 “빈대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시민들이 공황 상태에 빠질 정도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클레망 보네 교통부 장관은 “이번주 회의를 열어 (빈대로부터) 국민을 안심시키고 보호하기 위한 추가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