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고가도로를 달리던 관광버스가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15m 아래 지상으로 추락한 뒤 폭발해 탑승자 21명이 숨진 가운데 불길에 휩싸인 버스에서 생존자들이 탈출할 수 있도록 도운 흑인 청년 2명이 영웅으로 떠올랐다.
4일(현지시간) 영국 BBC에 따르면 베네치아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던 부바카르 투레(27)는 3일 오후 7시45분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도중 천둥이 치는 듯한 굉음을 들었다. 지진이 일어났다고 여긴 그는 창문을 열어 아래를 내려다보았고, 넘어진 버스에서 화염이 치솟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함께 사는 룸메이트 오디온 에보이데와 함께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버스가 불타고 있는 곳으로 갔을 때 한 여성이 ‘내 아기, 내 아기’ 하고 소리치는 것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깨친 창문을 통해 그 여성을 가까스로 탈출시켰죠. 이어 심한 화상을 입었지만 아직 살아있는 그의 아들도 꺼냈습니다.”(부바카르 투레)
두 사람은 버스 안에서 소화기를 꺼내 불을 끄기 시작했다. 사고 현장을 지나가던 행인들도 소화기를 들고 합세했다. 하지만 뜨거운 불길을 잡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부바카르 투레와 오디온 에보이데는 신고를 받은 소방대원들이 출동할 때까지 기다리며 대신 버스 안에 있는 생존자들을 밖으로 탈출시켰다.
“여자, 남자, 어린이 등 닥치는 대로 끌어내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켰어요. 대부분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죠. 우린 여러 명을 구했지만 불행히도 많은 이들은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부바카르 투레)
소방대원들이 도착한 뒤에도 두 청년은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대원들이 불길을 잡고 부상자들을 상대로 응급조치를 하는 동안 곁에서 도왔다.
이 사고로 어린이를 포함해 탑승자 21명이 목숨을 잃었다. 희생자 중에는 우크라이나, 독일, 루마니아, 포르투갈 등 외국 국적자도 포함됐다고 베네치아 경찰은 밝혔다. 부상자 15명은 중환자실에서 치료 중인데 상태가 위독한 이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베네치아는 참사가 벌어진 직후 도시 전체에 3일간의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부바카르 투레는 아프리카 서부 감비아, 오디온 에보이데는 나이지리아 출신이다. 두 사람은 사고 이후 잠을 이룰 수 없다고 했다. 지역 언론 등에서 그들을 ‘영웅’이라고 부르며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지만 정작 둘은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란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 누군가를 영웅으로 만든다면,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죠. 다만 우리는 그냥 두면 죽을 수도 있는,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들 곁을 차마 떠날 수 없었습니다.”(부바카르 투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