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의 고백… “문재인정부가 집값 못 잡아 국민이 좌절, 분노”

신간 ‘부동산과 정치’서 文정부 부동산 정책 실패 원인 다각도로 진단

문재인정부 집값 폭등 책임자로서 성찰과 함께
지난 정부 부동산 정책 좌절 통해 교훈 얻길 당부

“모두에게 비난 받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이 먼저 말문을 열어야
文정부, 부동산시장 여건 어려운 상황 속 안타깝게도 잘 대처 못해”
임대사업제도와 종합부동산세 손질 실책도 인정
후폭풍에 “문재인정부와 민주당 갈팡질팡, 허둥지둥”
“세금이 중요한 부동산 정책 수단인 건 맞지만 ‘만능’은 아니다
지금 정부 행태 보면 (전 정부보다) 나쁜 형태로 문제 반복될 수도”

“문재인 정부는 집값을 못 잡았다. 그냥 못 잡은 정도가 아니라, 두 배 넘게 뛰어버린 아파트 단지가 허다했다. 연이어 전세금도 급등했다. 어떤 말로도 변명이 되지 않는다. 국민들은 좌절하고, 분노했다. 결국 정권은 교체되었고, 그 원인의 하나로 부동산 문제를 꼽는 사람들이 많았다.”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2019년 6월 퇴임 당시 청와대 춘추관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노무현정부에 이어 문재인정부까지 집값과의 전쟁에서 참패하고 물러난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최근 발간한 ‘부동산과 정치’(오월의봄)에서 밝힌 내용이다. 책은 노무현·문재인 정권이 민심의 심판을 받는 결정적 계기 중 하나로 작용한 부동산 정책 실패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를 자기 잘못에 대한 성찰과 함께 다각도로 진단한다. 이유가 무엇이든 문재인정부의 책임이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문재인정부 부동산 정책이 왜 좌절했는가를 진지하게 돌아보면서 제대로 교훈을 얻는 건 한국사회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하면서다. 

 

“필자는, 그만한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책임자 혹은 설계자로 거론된다. 시민단체와 전문가, 언론이나 국민의힘, 민주당 모두 집값 폭등의 가장 큰 책임자 중 하나로 필자를 지목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내가 세금을 제대로 올리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반면, 반대로 보수언론 등에서는 내가 세금 폭탄을 주도했다고 비난했다. 또 임대등록제 확대로 집값을 올린 원흉이 되어 있기도 하다.”(9∼10쪽)


책에서 그는 “모두에게 비난을 받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이 먼저 말문을 열 필요가 있다”면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면, 왜 그러했는지, 또 어떻게 하면 반복하지 않을지 기록으로 남기고 토론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또 ‘이렇게 하면 된다’고 주장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비판도 제대로 따져봐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성찰 없이는 미래에 반복될지 모를 상황에 올바로 대처할 수 없다”며 문재인정부가 왜 집값을 잡지 못했는지, 집값을 잡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했는지, 집값이 무엇 때문에 상승했는지 등을 하나씩 톺아보게 한다. 

 

책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부동산시장 여건이 매우 어려운 상황을 마주했다. 전 세계적인 유동성 확대에다 이명박·박근혜정부 기간 줄어들었던 공급이 문제가 된 시점이었다. 더구나 코로나19로 재정까지 푼 터라 경제위기 우려 속에서도 자산시장이 폭등하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주식, 부동산, 코인, 명품 등 돈이 될 만한 거라면 어디든 투기적 수요가 몰려들었다. 저금리에다 과다한 유동성은 주택 수요를 폭증시킨 반면, 공급 시차로 인해 주택 공급은 적기에 따라주지 못했다. 

 

저자는 “그러나 이것은 주어진 상황이자 조건이라는 뜻이지, 이 때문에 집값 폭등은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 아니다”라며 “안타깝지만 문재인 정부는 더 잘할 수 있었고, 더 잘했어야 했다. 무엇보다 그동안 근근이 버텨오던 집값이 2020년 하반기부터 2021년 상반기까지 거의 무방비 상태로 폭등하는 일이 벌어졌던 것은 너무 가슴 아프다”고 토로했다. 

 

실제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경기순환상 집값이 상승하던 시기에 집권했다. 당시는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 일본 등 전 세계의 집값도 상승하던 시기였다. 실제로 2017년 5월 문재인정부 출범부터 2021년 10월의 고점까지 서울 아파트값은 두 배 가까이 올랐다. 노무현정부 이후 최대 상승 폭이었다. 문재인정부는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28번이나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지만, 정책의 효과는 국민의 불안을 달랠 만큼 빨리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2020년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금리는 사상 최저로 낮췄고, 대출 상환은 연기했으며, 몇 차례에 걸쳐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그런데 풀린 돈들이 부동산과 주식, 코인 등으로 몰리면서 집값은 더 상승했다. 집값이 폭등하자 온 나라가 집값에 매달렸다. 집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정부를 믿고 집을 사지 않고 기다리는 사람들은 분노했다. ‘왜 이 미친 집값을 잡지 못하느냐’고 항의가 빗발쳤다.

 

저자는 시장 혼란과 대상자 반발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부여당이 강하게 밀어붙인 집값 안정화 대책의 대표 사례인 임대사업제도와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손질 과정에서도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임대사업제도는 또 다른 정책 혼란 사례다. 2017년 말 민간임대사업자의 등록임대주택을 확대·강화한다는 권장책을 발표한 다음, 1년도 안 돼 이를 폐기하고 되돌렸다. 초기의 상황 판단이 잘못되었거나 이후 상황 전개에 문제가 있었다면, 당연히 수습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더 문제는 축소, 폐지, 존치 등으로 오랫동안 혼란을 겪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다주택 보유자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68쪽)

 

“내가 부동산 정책에 관여할 때까지 바로 이 대목에서 이른바 개혁주의자들과 입장이 달랐다. ‘보유세는 집값을 잡는 세금이 아니다’는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발언(국회 답변, 2018년 8월 27일)은 내 생각과 같았다. 보유세 실효세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미국이 역설적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집값이 많이 오른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 나라는 유동성 때문이고, 우리는 세금이 낮아서 그런가?”(144쪽)

 

특히 문재인정부 당시 종부세 문제는 ‘징벌적 세금’이란 비판까지 나올 만큼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예견됐지만 문재인정부와 민주당이 세밀한 설계와 충분한 대비 없이 ‘무조건 강화’를 밀어붙였다가 호되게 당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서도 저자는 실책이었다고 털어놓는다. “결국 보유세는 아파트, 단독주택, 상가, 토지 등 부동산의 종류와 소재 지역에 따른 과세 형평성을 단계별로 높여가는 가운데, 점진적으로 부담을 높일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화가 나 있다고 고가·다주택만 올리려 해보지만, 그 고가의 기준 설정 때문에 다시 갈팡질팡했던 것이 2019년 말부터 2021년 중반까지 정부·여당의 모습이었다. 실제 종부세를 강화했더니 서울 아파트의 반 이상이 그 대상이 되었고, 이에 놀란 정부와 민주당은 서둘러 세금을 다시 낮추려 허둥지둥했다.”(145쪽)

 

그는 “세금이 중요한 부동산 정책 수단인 건 맞다”면서도 ‘세금 만능주의’는 경계해야한다고 당부했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세금은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 견주어도 약하지 않다. 오히려 강력한 요소가 많다. 그럼에도 실제 세 부담이 낮거나 형평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곤 한다. 또 모두가 불만이다.…집값에 분노한 사람들을 달래기 위해 누군가의 세금만 계속 높이려는 방식은 포퓰리즘일 뿐이다. 지속 가능성도 없다. 집값이 오르는 원인에 제대로 주목한다면 세금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부차적인 영역이다. 핵심은 과잉유동성이 금융시스템을 통해 자산시장으로 흘러들어가는 고리를 차단하는 것이었는데, 그 부분은 감시의 사각지대에 버려두고 세금이라는 오래된 논란에 에너지를 빼앗겼다.”

 

저자는 문재인 정부가 집값을 잡지 못한 큰 이유 중 하나로 “정책 리더십이 흔들렸기 때문”이라고 도 했다. “세금을 더 높이자” “임대주택으로만 200만 호를 추가 공급하자” “용산공원, 김포공항, 그린벨트에 모두 집을 짓자” “청년들이 집을 살 수 있게 돈을 더 빌려주자” 하는 식이었다면서 “중심을 잡았어야 할 정부·여당(더불어민주당)마저도 결국 포퓰리즘(대중인기 영합)에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집값이 폭등하던 시기, 문재인 정부는 정책의 리더십을 잡지 못하고 이런 상황에 휩쓸리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 정책이란 것이 특정 자연인이 압도하는 구조가 절대로 아니고 나 또한 그런 식의 전횡을 했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지만,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이 ‘의인화’됨으로써 불신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안타깝다”고 했다. 그러면서 금융 규제, 3기 신도시 발표, 임대등록제 등이 적절한 시기에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점에서 자신의 책임이 크다고 고백했다. 

 

아울러 윤석열정부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실책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의 윤석열 정부 행태로 보면, 또 머지않아 집값이 회복되고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기 시작하면 똑같은, 혹은 더 나쁜 형태로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면서 말이다. “부동산 정책의 낭만주의, 선동주의와 절연하고 시장과 정부 역할에 대한 한국적 원칙을 정립해야 한다. 그것이 문재인 정부의 좌절에서 배울 일이다.”(27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