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정보에 대한 의식이 흐리던 시절, ‘환경 조사서’, ‘신상 조사서’ 따위를 작성하는 때가 있었다. 그 양식에는 취미란이 있는데, 마땅히 떠오르지 않으면 대개 ‘독서’라고 적었다. 독서는 그렇게 등산이나 바둑처럼 취미의 하나가 되곤 했지만, 누구나 그게 취미를 넘어서는 것이라는 생각은 갖고 있었다. 학교에서 항상 중요하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에서도 실상 독서는 구호에 불과했다. 장관이나 교장이 바뀌면 불쑥 ‘독서 운동’이 벌어지고 방학 과제로 가끔 등장했을 뿐, 학습 자체가 교과서조차 제대로 읽지 않은 채 참고서 외우기만 답습한 까닭이다. 그러다 보니 정작 ‘시험 범위 밖’의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성적이 처지고, 성적이 좋아 잘 풀리는 사람은 독서의 맛을 모르는, 그래서 그게 결국 취미의 일종이 되고 마는 경향이 생겼다. 한데 진학, 자격 취득 같은 당장의 필요만을 위해 책을 ‘보았을’ 뿐, 거기서 스승을 만나거나 길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은 무엇을 지침 삼아 삶을 영위할까? 이마누엘 칸트는 “계몽이란 인간이 스스로의 잘못으로 초래한 미성년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도서관과 인연이 없는 그는, 대체 어떻게 평생 동안 자기를 계몽시켜 나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