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8강전, 우리 대표팀이 개최국 중국을 눌렀다. 하지만 국내 양대 포털사이트로 불리는 네이버와 다음에서 마련한 ‘응원’ 페이지에선 사뭇 다른 분위기가 보였다. 일반적으로 국내팀을 응원해야하는 국내 양대 포털사이트에서 중국을 응원하는 비율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카카오가 클릭 응원 기능을 폐쇄한 2일 오후 5시 기준으로 중국팀 응원 수는 2919만 건(93.2%)까지 불어나 211만 건인 한국팀(6.8%)을 압도했다. 한국 포털사이트에서 10명 중 9명이 중국팀을 응원하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5일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일 축구 경기와 관련해 ‘해외 세력’이 가상사설망(VPN)을 통해 자기의 본래 IP 주소를 숨기고 ‘다음’에 국내 이용자인 것처럼 우회 접속했고, 컴퓨터가 같은 작업을 자동으로 반복하게 하는 ‘매크로’ 기능을 이용해 중국을 응원하는 댓글을 대량으로 생성했다는 점이 드러났다. ‘다음’ 운영사인 카카오가 당시 응원 클릭 3130만건 가운데 2294만건의 IP 주소를 확인해본 결과, 네덜란드 주소 1곳에서 1539만건, 일본 주소 1곳에서 449만건의 클릭이 들어온 것으로 나타났다. 각 IP 주소의 이용자가 실제로 어디에서 조작을 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음 응원하기 서비스에서 대한민국 아닌 다른 나라를 응원한 사례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지난달 13일 열린 대한민국 대 사우디아라비아의 A매치 친선경기에서도 대한민국 응원 클릭은 48%였던 반면, 사우디는 52%였다. 지난달 28일 열린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16강전 대한민국과 키르기스스탄 경기에서도 대한민국 응원 클릭 수는 15%에 그쳤고, 키르기스스탄을 응원한 이들은 85%에 달했다.
다음 운영사인 카카오는 4일 축구 8강전의 클릭 응원 수 약 3130만 건의 IP를 분석한 자료를 방송통신위원회 등에 보고했다. 분석 내용에 따르면 네덜란드와 일본이 각각 출처인 IP 2개의 클릭 응원 수만 1988만 건으로 전체의 63.5%에 달했다. 2개 IP를 제외한 나머지 해외 IP 271개의 클릭 응원은 4만건으로 전체의 0.1%에 불과했다. 국내에서는 5318개 IP에서 301만 건(9.6%)의 클릭이 이뤄졌다.
문제의 클릭 응원 기능을 카카오는 2015년 3월 처음 스포츠 서비스에 적용했다. 네이버와 달리 계정에 접속하지 않은 비회원까지 참여할 수 있고 클릭 횟수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매크로 프로그램 등을 통한 조작에 취약한 환경이다. 카카오는 계정 접속 없이 참여할 수 있는 블로그 서비스 ‘티스토리’ 등에서의 조작 행위도 확인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에 대한 카카오 입장은 어떨까. 카카오는 응원 페이지 여론조작 의혹 원인이 해외 이용자의 매크로프로그램이라는 점은 인정했다. 즉 이용자가 적은 심야 시간에 2개 IP가 매크로 프로그램을 활용해 만들어낸 결과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번 어뷰징 사건 주체가 누구인지는 미궁속에 있다. 이번 사건에서 카카오는 어뷰징 행위가 일어난 점은 인정하지만 절대 카카오가 관련된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또 중국 응원이 이번 매크로 조작사건의 목표였던 만큼 중국 또는 북한의 해킹부대라는 추측에서부터 국내 해커 소행이라는 추측 등이 난무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범부처 태스크포스 구성을 꾸리며 발빠른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이번 사안을 정치적으로 확대해 지금까지 눈엣가시였던 포털사이트에 대한 압박수위를 높이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전날 방송통신위원회는 “해외 세력이 가상망인 VPN을 악용해 국내 네티즌인 것처럼 우회 접속하는 수법, 컴퓨터가 같은 작업을 자동 반복하게 하는 매크로 조작 수법을 활용해 중국 응원을 대량 생산했다”고 발표했다. 이동관 방통위원장은 “이번 건은 응원 댓글 이야기이지만, 만약 이런 사태가 매크로 기술을 동반해 선거 때나 긴급재난, 금융시장에서 엄청난 충격을 주는 사태로 일어나면 큰 일”이라며 이번 사건을 9·11테러에 비유했다. 여기에 한덕수 국무총리는 포털사이트 ‘다음’에서의 여론 조작 의혹과 관련해 대책 마련을 위한 범부처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지시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대대적인 총 공세에 나섰다. 특히 내년 총선 여론조작 가능성까지 제기하며 더불어민주당의 흑역사인 드루킹사건까지 소환했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그동안 드루킹 사건을 비롯해 수 차례 매크로 논란이 있었음에도 우리 주요 포털이 불순한 여론조작 공작에 무방비 상태에 있다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드루킹 사건은 2017년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포털 댓글 여론을 조작한 사건이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전날 자신의 SNS를 통해 “포털 다음이 여론조작의 숙주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며 “좌파 성향이 강한 포털 사이트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점에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여론조작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