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굳은 표정이었다. 경기가 끝나도 웃지 않았다. 분명 승리했는데, 경기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고, 함께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선수들은 감독의 눈치만 봤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여자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정선민 감독 이야기다. 이런 정 감독도 마지막에 눈시울을 붉혔다. 북한과 대회 마지막 경기에서 동메달을 따내고 난 뒤였다. 선수들에 대한 고마움, 또 감독으로서 마지막 경기에 대한 감정이 섞여 있는 듯했다.
한국은 5일 중국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 체육관에서 열린 북한과 동메달 결정전에서 93-63으로 북한을 완벽하게 제압했다. 점수 차가 30점이나 날 정도로 두 팀의 기량 차이는 컸다. 박지수(KB)는 25점 10리바운드 7어시스트로 맹활약했다.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한 김단비(우리은행)는 21점 6리바운드 4어시스트로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를 맛봤다.
경기 후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낸 정 감독은 “‘동메달도 충분히 가치가 있으니 모두 하나 돼 이겨보자’고 말했는데 선수들이 다 잘 뛰어줬다”며 “12명의 선수가 모두 코트를 밟고 마무리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결국 값진 동메달을 땄다”며 “감동적인 경기였다”고 돌아보며 얼굴이 상기됐다.
하지만 분명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정 감독은 매 경기 1쿼터 초반 상대에게 끌려가고 있다며 집중력을 당부했다. 하지만 이날 경기에서도 대표팀은 1쿼터 초반 북한에 리드를 뺏겼다. 대표팀은 경기 초반 5-0까지 끌려가다가 1쿼터 종료 3분41초를 남겨놓은 상황에서야 13-12로 역전에 성공했다. 정 감독은 “1쿼터 초반 많이 밀리는 상황 속에서 선수들에게 집중력 있게 수비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요구했다”며 “전체적인 경기운영과 분위기 자체가 밀리는 느낌이어서 이소희와 진안 등 선수교체를 통해 분위기 반전을 노렸다”고 돌아봤다.
북한이 자랑하는 205㎝ 센터 박진아는 이 경기에서 풀타임을 소화했고 양팀 통틀어 가장 많은 27득점을 올렸다. 예선 2차전에서 첫 남북대결을 펼쳤을 때 정 감독이 박진아를 향해 “우리 팀에 있었으면 만리장성도 넘었다”고 말할 정도로 재능이 뛰어난 선수였다. 정 감독은 이런 박진아를 박지수가 효과적으로 막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북한과 첫 경기에서 박지수가 박진아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이 부딪히다 보니 어렵게 풀어갔다”며 “박지수는 첫 번째 경기에서 본인이 좀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이미 파악하고 경기에 임했고, 첫 만남 떄보다 더 좋은 플레이를 펼쳤다”고 칭찬했다.
끝으로 정 감독은 이번 대회를 끝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정 감독은 “나에게 있어 이번 아시안게임은 대표팀 감독으로서 마지막이었다”며 “이날 유종의 미를 거둔 것만으로도 선수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라고 말한 뒤 인터뷰장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