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속에서 피어난 지성의 향연/임병철/여문책/2만2000원
“페트라르카는 단테에게 의도적인 냉담이나 무관심 이상을 표현하지 않았다. 단테가 ‘선술집이나 저잣거리의 무지한 이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저속한 언어를 구사한 통속 작가에 지나지 않고, 그렇기에 그의 책들은 한낱 ‘생선 가게의 포장지’로나 쓰일 수 있을 뿐이라고 냉소할 정도였다.”
라틴어로 쓰인 고전의 가치에 주목한 첫 번째 르네상스인 페트라르카는, 중세 세계관의 문학적 결정판으로 평가되던 단테의 ‘신곡’을 냉소했고 저속한 언어를 구사했던 단테를 비아냥거렸다. “라틴 전통에 기초한 새로운 문화의 선도자를 자임하던 페트라르카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단테가 고전에 무지한 구시대의 열등한 인물로 받아들여졌다는 점은 분명하다.”
페트라르카는 그리하여 현실 정치에 뛰어든 능동적 시민의 전형이었던 단테와 달리, 마치 세파에 초연한 듯 아비뇽, 밀라노 등의 여러 도시를 오가며 ‘세계시민의 삶’을 추구한 방랑 지식인으로 살아갔다. 고독 속으로 침잠해 고전을 읽으면서 인간의 도덕성이 나락으로 떨어진 시대를 규탄하고 새 시대를 꿈꾸며. 역사가 야코프 부르크하르트가 ‘근대 유럽의 첫 아이’로 불렀던 르네상스인의 탄생이었다.
이들 르네상스 지식인들은 과학적 형이상학적 앎의 문제에 천착하기보다는 인간의 삶과 사회 자체를 변화시켜서 시민들을 올바른 삶으로 이끌고자 했다. 즉 인간과 사회를 인간답게 개선하려는 것이 그들의 지향점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인간과 사회를 개선하기 위해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사회와 공동체에 대한 다양한 정치사상적 논의, 인간 존재에 대한 본원적 질문, 역사의식의 성장이라는 세 방향으로. 르네상스인들은 저마다 말하는 인간 ‘호모 나란스’가 돼 인간의 삶과 공동체에 대해 다양하고 도전적인 담론을 쏟아냈다.
이들 르네상스 지식인의 이야기나 사고, 주장 가운데 지금 시대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면 르네상스가 꽃피는 데 가교 역할을 했던 살루타티는 패자인 키케로와 승자인 카이사르에 대한 기존 인식을 뒤집고 키케로야말로 공화국의 진정한 수호자이고 카이사르는 공화국의 반역자라며 인식의 대선회를 이끌어냈다.
“빛바랜 키케로의 편지들을 읽으면서 살루타티가 스토아주의 철학자가 아니라 정치가이자 시민으로서 낸 키케로의 목소리에 감화되었고, 결국 그 고대인이 대변하는 시민적 삶을 예찬하면서 카이사르를 공화국에 범죄를 저지른 독재자라고 비난하게 되었던 것이다.”
책에서 그려지는 르네상스의 모습은 무지몽매한 암흑의 중세를 끝내고 계몽의 빛을 비춘 출발점으로서 가장 역동적으로 화려한 시기로만 이해되지 않는다. 오히려 한편으론 모순적이고, 다른 한편으론 복잡다기한 사고실험의 흔적들이 쉽게 목격된다. 저자가 “긴장과 갈등”, “통일되지 못한 사고의 혼란”이야말로 르네상스답게 만드는 문화적 징후라고 주장한 이유다.
그런데 르네상스가 현대적 의미의 인문주의가 아니라면 르네상스와 르네상스인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다시 말해 우리는 르네상스와 르네상스인들에게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 르네상스인들은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인간과 사회의 개선이라는 주제를 사유의 화두로 던졌다. 이것이 그들이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 난쟁이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럼으로써 설령 고대의 거인들에게 기대고 있었지만 난쟁이 르네상스인들은 그들의 어깨 위에서 그들보다 더 멀리, 더 많이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