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 시절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은 재임 내내 한전을 두부 공장에 빗대 전기료 인상을 읍소했다. 김 사장은 “수입 콩값이 올라갈 때도 두부값을 올리지 않았더니 이제는 두부값이 콩값보다 싸졌다”고 했다. 두부값은 전기요금을, 수입 콩값은 연료비를 뜻한다. 탈원전 비판을 피하려 전기료 동결에 집착했던 문 정부와 여당은 귓등으로 흘렸다.
대가는 혹독했다. 한전은 전기를 팔수록 손해를 보는 역마진에 시달리며 만신창이가 됐다. 부채 규모가 자회사를 포함해 200조원을 넘어섰고 이자 부담만 하루 118억원, 연간으로는 4조3000억원에 달한다. 미래 세대가 떠안아야 할 빚 폭탄이 아닐 수 없다. 한전이 부족 자금을 메우기 위해 채권을 남발해 자금시장까지 교란할 지경이다. 윤석열정부가 지난해 2분기 전기요금을 킬로와트시(㎾h)당 6.9원 올린 뒤 다섯 분기에 걸쳐 40.4원을 인상했다. 하지만 한전은 적자 수렁에서 벗어날 기미가 없다. 오죽 답답하면 김동철 신임 한전 사장이 취임하자마자 4분기 전기요금을 25.9원 더 올려 달라고 호소했을까.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한국 전기료는 작년 기준 메가와트시(㎿h)당 106.8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치(196.1달러)의 절반 수준이다. 산업용 전기요금도 ㎿h당 95.3달러로 OECD 평균(144.7달러)을 크게 밑돈다. 수차례 인상했다지만 애초 전기료가 워낙 쌌고 인상 폭도 다른 나라에 비해 미미했기 때문이다. 급기야 값싼 전기료가 통상분쟁의 불씨로 비화했다. 미국 상무부는 한국의 값싼 전기요금이 철강업계에 사실상 보조금을 주는 역할을 한다며 한국산 철강제품에 보복성 관세(상계관세)를 물렸다. 이번 결정이 반도체 등 다른 품목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주식시장에서도 한전은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지 오래다. 주가는 2016년 5∼6월 6만원대를 기록한 후 줄곧 빠져 1만7000원대에서 맴돈다. 정부 지분이 50%를 웃돌지만 외국인과 소액주주도 14%, 28%에 이른다. 이러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정부의 전기요금 개입을 문제 삼아 손해배상을 제기해 투자자·국가 간 분쟁(ISD)사태까지 벌어지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