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10명 중 8명 이상 ‘만성통증·공황장애·이혼’

A(37·여)씨는 집에서 쫓겨나는 악몽을 꾼다.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된 그는 스트레스로 얼마 전부터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두통약도 밥 먹듯 먹고 있다. A씨처럼 전세사기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기에 처한 가구 대부분이 만성통증·공황장애·이혼 등 건강이나 사회적 관계가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월 20일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속출한 인천시내 한 아파트 승강기에 전세사기 피해 아파트임을 알리는 문구가 붙어 있다. 뉴스1

민주연구원과 더불어민주당 전세사기피해고충센터(센터장 권지웅)는 지난 6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세사기 특별법이 시행됐지만 여전히 피해 복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과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전날 발표한 실태조사에선 보증금 미반환 위기 가구의 80% 이상이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악화했다는 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해당 조사는 지난달 17일부터 27일까지 서울 강서구 거주 임차 가구 중 전세사기 등으로 보증금 미반환 위기에 처한 주택 약 9000가구를 대면·전화·온라인으로 설문한 것으로 전체 응답자는 239명이다.

 

조사 결과를 보면 전세사기 특별법을 시행한 지 3개월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보증금 위기 가구의 삶의 질은 오히려 하락한 것으로 확인됐다. 신체 건강에 대해선 응답자의 81.2%가, 정신 건강에 대해선 96.6%가 이전보다 나빠졌다고 답했다. 이들은 무기력증, 우울증, 불면증, 대인기피증, 폐쇄 공포증, 자살 충동, 공황장애와 같은 정신적 장애뿐만 아니라, 수면장애, 체중 감소, 이명, 탈모, 신경쇠약, 생리불순, 이유 불명 만성통증, 담낭용종, 하혈 등의 신체적 문제도 겪고 있었다. 또 응답자의 92.1%는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가 하락했다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 전세사기 피해 종합금융지원센터. 뉴스1

응답자의 대부분이 정부의 대책이 보증금 미반환 피해를 복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한 것 역시 주목할 지점이다. 정부는 구제책으로 내놓은 경매·경매 유예를 신청한 이는 전체의 10.5%에 불과했고, 대환 대출·최우선변제금 무이자 대출 등 정부 대출을 받은 경우는 8.1%에 그쳤다. 응답자 다수가 법원에 임차권 등기 명령을 신청(21.7%)하거나 HUG 전세사기 피해 지원 센터에 피해를 접수·상담(23%)했고, 심지어는 개인적으로 지인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상담(19.4%)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별다른 조치를 하지 못했다는 응답은 8.6%였다.

 

민주연구원과 민주당 전세사기피해고충센터는 응답자 10명 중 7명(68%)이 보증금의 절반 이상을 사실상 정부가 보증한 대출 상품으로 입주했고, 10명 중 9명(98.7%)가 공인중개사의 중개를 받은 사람들인 만큼 정부가 책임감을 느끼고 보다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