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의 익명출산 허용하는 보호출산제, 수백명 영아 유기 막을 수 있을까 [오늘의 정책 이슈]

의료기관에서 출산한 임산부가 직접 아기를 기르지 못할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보호하는 보호출산제가 내년 7월 도입된다. 병원 밖 출산과 출생 미등록 아동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일부 위기 임산부의 아기 유기·방임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9일 ‘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경제·사회·심리적 어려움에 부닥친 위기 임산부는 불가피한 경우 신원을 밝히지 않고도 의료기관에서 출산할 수 있게 됐다. 이 같은 ‘보호출산’을 신청하면 가명과 주민등록번호를 대체하는 ‘관리번호’가 생성돼 위기 임산부는 의료기관에서 무료로 산전 검진과 출산을 할 수 있다. 

 

보호출산 신청 산모가 산후 7일간 아기를 직접 양육하지 않겠다는 뜻에 변함이 없으면 양육권은 지방자치단체로 인도된다. 지자체는 아동복지법에 따라 입양 등의 보호절차를 밟게 된다. 보호출산 신청 생모는 아동이 입양특례법상 입양 허가를 받기 전까지는 보호출산을 철회할 수 있다.

 

보호출산을 통해 태어난 아동은 성인이 되거나 법정대리인 동의를 받아 생모의 이름과 보호출산 선택 사유 등이 담긴 신청서류(아동권리보장원 보존)의 공개를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생모가 동의하지 않거나 동의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엔 인적 사항을 제외한 내용만 공개된다. 이번에 통과된 보호출산제는 의료기관이 아기 출생 사실을 지자체에 통보하게 하는 내용의 출생통보제와 함께 내년 7월19일 시행된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번 법 제정을 통해 위기 임산부들이 체계적인 상담을 받을 수 있게 됐을 뿐 아니라 어떤 임산부라도 안전하게 병원에서 출산하는 길이 열려 산모와 아동의 생명과 건강을 지킬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보호출산제가 아이의 알 권리를 빼앗고, 임산부가 쉽게 양육을 포기하게 한다는 반대 목소리도 많다. 보호출산을 통해 태어난 사람은 생모의 동의 없이는 자신의 핏줄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위기 임산부가 사전 신청 없이 아동을 출산한 후에도 생모 익명화와 아동의 보호조치를 희망하는 경우 1개월 이내에 신청할 수 있게 한 부분에 대한 우려도 있다.

오영나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는 “이같은 조항은 병원 밖 출산을 막겠다는 취지와도 무관하고, 오히려 출산 후 아동의 장애가 확인됐을 경우 등에 양육을 포기하게 할 우려가 있는 독소조항”이라고 지적했다. 

 

위기 임신부에게 충분한 상담과 정보 제공을 하고, 미혼모 지원도 늘려 보호출산을 ‘최후의 보루’로만 선택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민정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충분한 지지가 있다면 아이가 엄마와 분리되지 않고 자랄 수 있게 된다”며 “보호출산제가 있다고 해도 이를 선택하는 임산부가 없어지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