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사업 추진 전 환경 영향을 예측·평가해 저감 방안을 마련하도록 한 제도인 환경영향평가는 ‘동네북’ 신세가 된 지 오래다. 전국 곳곳에서 거짓·부실 논란이 끊이지 않으면서다. 제도 불신이 확산하면서 환경영향평가 결과는 그저 이해관계자 집단의 시비거리로 전락한 형편이다. 사업자는 환경영향평가를 그저 성가신 행정절차 중 하나 정도로 취급하면서 지역 주민의 의견 수렴 절차까지 형해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한다는 취지는 퇴색된 채 환경영향평가가 지역사회 갈등에 불만 지피는 것 아니냐는 자조가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세계일보는 ‘환경영향평가 2.0’ 시리즈(총 5회)를 통해 그 난맥상을 분석하고 일본·미국·영국 사례에서 대안 모색을 위한 단서를 살펴보고자 한다.
1회에선 전국에서 빈발 중인 환경영향평가 거짓·부실 논란의 실상을 다룬다.
◆평가서엔 수리부엉이가 없다
“여기 바로 앞에 8m 높이 데크를 놓는다는 건데 수리부엉이가 여길 비행하는 데 방해가 클 수밖에 없을 거예요.”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이 지난 3일 오전 11시쯤 대구 수성구 화랑교 부근 금호강변 팔현습지에 깎아지른 듯 서 있는 절벽을 가리키며 이같이 말했다. 그가 ‘8m 높이 데크’라고 한 건 최근 환경부 낙동강유역환경청이 추진 중인 ‘대구시 금호강 사색있는 산책로 조성 사업’(금호강 사업) 공사가 시작될 경우 들어설 구조물을 뜻했다. 정 사무처장은 “이 절벽이 일종의 하식애(하천의 침식 작용으로 생긴 하천 절벽)인데 수리부엉이 집이 여기 있다”며 “바위나 돌 틈에 평평한 곳을 찾아 수리부엉이가 집을 짓고 새끼를 많이 기른다”고 했다. 수리부엉이는 멸종위기 2급 야생동물이다.
정 사무처장이 산책로 사업지에서 수리부엉이 개체 서식을 최초 확인한 건 올 6월9일 오후 6시50분쯤이다. 절벽에 앉아 쉬던 수리부엉이 한 마리와 함께 덤불 속 둥지에서 들려온 울음소리로 알게 된 다른 한 마리로, 그날 총 두 마리를 확인했다는 게 정 사무처장의 설명이다. 이후 2개월간 수리부엉이 서식을 확인하고 사진으로 기록한 게 총 9차례였다.
문제는 금호강 사업을 위해 작성된 환경영향평가서엔 수리부엉이 서식이 전혀 기재돼 있지 않았단 것이다. 낙동강유역환경청이 대행을 맡기고 협의기관인 대구지방환경청이 확인까지 마친 이 환경영향평가에서 현지조사로 확인된 법정보호종은 단 3종(수달·삵·원앙)에 불과했다.
반면 정 사무처장이 조사를 통해 그 서식을 확인한 법정보호종은 수리부엉이를 포함해 총 9종(수달·삵·담비·원앙·황조롱이·수리부엉이·흰목물떼새·얼룩새코미꾸리·남생이)이나 됐다. 결국 환경영향평가 결과에 대한 의문이 확산하자 대구환경청은 이달 중 ‘거짓부실검토전문위원회’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거의 매번 거짓·부실 의혹의 대상이 되는 건 평가 내용 중 동식물 분야다. 대개 동식물 습성이나 계절적 요인을 고려치 않은 현지조사가 그 원인으로 지목된다.
금호강 사업만 하더라도 거짓·부실 의혹이 제기된 포유류·조류·양서류·파충류 등 육상동물 현지조사가 2021년 4월 중 약 13시간(27일 오후 1시50분∼오후 8시, 28일 오전 7시∼오후 2시), 같은 해 7월 중 약 12시간(1일 오후 2시20분∼오후 8시, 2일 오전 6시30분∼오후 1시) 진행됐을 뿐이다. 절대적 시간이 충분치 않을 뿐 아니라 심야·새벽 시간대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것도 문제다. 정 사무처장은 “수리부엉이만 해도 야행성”이라며 “법정보호종 9종을 확인한 모니터링 또한 매번 새벽부터 진행됐다”고 말했다.
환경영향평가 업체도 할 말은 있다. 8년째 영업 중인 A업체 관계자는 “동식물 조사가 전수조사가 아니지 않냐. 결국 샘플 조사를 할 수밖에 없다”며 “3∼4일에 걸쳐 보고 야간조사까지 하더라도 거기 사는 분들이 계속 보는 것과 확실히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법정보호종인 맹꽁이만 해도 언제 나와서 번식을 할지 알 수가 없다. 번식기에만 소리를 내는데 우리가 하루 이틀 차이로 놓칠 수 있다”고도 했다.
◆경찰 수사까지… “평가비 정상화해야”
그러나 그 한계를 그대로 방치할 순 없는 문제다.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적정 대가 산정을 통해 이 ‘구멍’을 최대한 메울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러지 않으면 이 한계를 빌미로 한 의도적 거짓·부실이 확산하고 경찰 수사로까지 이어져 사회적 비용이 산더미처럼 불어나는 경우가 잦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경찰 수사 중인 거제 남부관광단지 조성사업 환경영향평가가 그런 사례다. 협의기관인 낙동강환경청은 올 5월4일 환경영향평가서 협의에서 법정보호종 조류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사업 예정지에서 불과 1㎞ 정도 떨어진 곳에 팔색조(멸종위기 2급) 번식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업체는 이 의견을 받아들여 5월11일 추가 조사했고 “사업지구 내 법정보호종 조류 울음소리, 개체, 서식 및 번식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재차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 지역 환경단체가 올해 이 지역에서 팔색조 둥지를 9개나 확인했다고 밝히면서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업체가 추가 조사 시점을 5월11일로 잡은 데 대해 팔색조 번식기를 피하려는 의도가 있다며 고발 조치도 했다. 노자산지키기시민행동 활동가인 원종태씨는 “논문을 보면 팔색조는 6∼7월 번식기에 가장 많이 운다고 한다”며 “업체 소속 전문가들이 그걸 모를 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업체는 이 같은 의혹을 부인하고 있는 만큼 결국 경찰 수사로 결론이 날 때까지 이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홍석환 부산대 교수(조경학)는 이런 의도적 거짓·부실 문제에 대해 “개발을 추진하는 사업자가 돈을 주고 업체에 맡기는 구조니 전문가라도 불성실하게 조사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환경단체가 그 대안으로 거론하는 게 공탁제다. 사업자는 비용만 대고 제3의 기관이 환경영향평가를 발주하도록 해 독립성을 제고하자는 것이다. 다만 환경부는 거짓·부실 발생 시 책임 소재 불분명 등 한계를 들어 공탁제 도입에 부정적이다.
환경영향평가 비용 정상화가 실현 가능한 대안으로 거론되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강은주 생태지평 연구기획실장은 “짧은 시간 내 한정된 인원으로 조사를 해야 하는 현재 환경영향평가의 한계를 완화하는 데 비용 정상화는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영준 한국환경연구원 부연구위원은 “2종 업체(재대행 업체) 계약금을 보면 동식물 조사의 경우 박사급 이상을 요구하는데 하루 인건비도 안 맞는 경우가 많다”며 “저가 대행 문제가 거짓·부실과 관련성이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