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강 평가서엔 없던 수리부엉이… 환경단체는 “9차례 확인” [심층기획-환경영향평가 2.0]

(1회) 거짓·부실의 늪

현지조사 땐 법정보호종 3종에 불과
환경운동연합 조사선 9종으로 늘어
동식물 습성·계절적 요인 미고려 탓
평가업체 “전수조사 아닌 샘플 조사”

거제선 ‘의도적 거짓’ 의혹 경찰 수사
전문가 “개발 사업자가 업체에 맡겨
불성실하게 조사할 수밖에” 지적도
환경단체 “공탁제 통해 독립성 제고”

개발 사업 추진 전 환경 영향을 예측·평가해 저감 방안을 마련하도록 한 제도인 환경영향평가는 ‘동네북’ 신세가 된 지 오래다. 전국 곳곳에서 거짓·부실 논란이 끊이지 않으면서다. 제도 불신이 확산하면서 환경영향평가 결과는 그저 이해관계자 집단의 시비거리로 전락한 형편이다. 사업자는 환경영향평가를 그저 성가신 행정절차 중 하나 정도로 취급하면서 지역 주민의 의견 수렴 절차까지 형해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한다는 취지는 퇴색된 채 환경영향평가가 지역사회 갈등에 불만 지피는 것 아니냐는 자조가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세계일보는 ‘환경영향평가 2.0’ 시리즈(총 5회)를 통해 그 난맥상을 분석하고 일본·미국·영국 사례에서 대안 모색을 위한 단서를 살펴보고자 한다.

 

1회에선 전국에서 빈발 중인 환경영향평가 거짓·부실 논란의 실상을 다룬다.



지난달만 해도 대구 금호강 개발 사업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거짓·부실 의혹이 제기돼 관할 환경 당국이 외부 전문가 심사 절차에 착수한 상태다. 올 5월엔 제주 제2공항 사업 전략환경영향평가에 대해 반대 단체가 거짓·부실 의혹을 제기했고, 8월에는 시민단체 고발로 거제 남부관광단지 조성사업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경찰 수사가 시작됐다. 전문가들은 끊이지 않는 거짓·부실 논란 이면에 환경영향평가 ‘가격 후려치기’ 관행이 자리 잡고 있다며 정상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왼쪽)이 지난 3일 대구 수성구 화랑교 부근 금호강변 팔현습지에서 기자에게 산책로 조성 공사가 예정된 이 지역의 생태적 가치를 설명하고 있다.

◆평가서엔 수리부엉이가 없다

“여기 바로 앞에 8m 높이 데크를 놓는다는 건데 수리부엉이가 여길 비행하는 데 방해가 클 수밖에 없을 거예요.”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이 지난 3일 오전 11시쯤 대구 수성구 화랑교 부근 금호강변 팔현습지에 깎아지른 듯 서 있는 절벽을 가리키며 이같이 말했다. 그가 ‘8m 높이 데크’라고 한 건 최근 환경부 낙동강유역환경청이 추진 중인 ‘대구시 금호강 사색있는 산책로 조성 사업’(금호강 사업) 공사가 시작될 경우 들어설 구조물을 뜻했다. 정 사무처장은 “이 절벽이 일종의 하식애(하천의 침식 작용으로 생긴 하천 절벽)인데 수리부엉이 집이 여기 있다”며 “바위나 돌 틈에 평평한 곳을 찾아 수리부엉이가 집을 짓고 새끼를 많이 기른다”고 했다. 수리부엉이는 멸종위기 2급 야생동물이다.

 

정 사무처장이 산책로 사업지에서 수리부엉이 개체 서식을 최초 확인한 건 올 6월9일 오후 6시50분쯤이다. 절벽에 앉아 쉬던 수리부엉이 한 마리와 함께 덤불 속 둥지에서 들려온 울음소리로 알게 된 다른 한 마리로, 그날 총 두 마리를 확인했다는 게 정 사무처장의 설명이다. 이후 2개월간 수리부엉이 서식을 확인하고 사진으로 기록한 게 총 9차례였다.

문제는 금호강 사업을 위해 작성된 환경영향평가서엔 수리부엉이 서식이 전혀 기재돼 있지 않았단 것이다. 낙동강유역환경청이 대행을 맡기고 협의기관인 대구지방환경청이 확인까지 마친 이 환경영향평가에서 현지조사로 확인된 법정보호종은 단 3종(수달·삵·원앙)에 불과했다.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이 지난 2022년 8월 8일 금호강 산책로 조성 사업부지에서 촬영한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 수리부엉이

반면 정 사무처장이 조사를 통해 그 서식을 확인한 법정보호종은 수리부엉이를 포함해 총 9종(수달·삵·담비·원앙·황조롱이·수리부엉이·흰목물떼새·얼룩새코미꾸리·남생이)이나 됐다. 결국 환경영향평가 결과에 대한 의문이 확산하자 대구환경청은 이달 중 ‘거짓부실검토전문위원회’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거의 매번 거짓·부실 의혹의 대상이 되는 건 평가 내용 중 동식물 분야다. 대개 동식물 습성이나 계절적 요인을 고려치 않은 현지조사가 그 원인으로 지목된다.

금호강 사업만 하더라도 거짓·부실 의혹이 제기된 포유류·조류·양서류·파충류 등 육상동물 현지조사가 2021년 4월 중 약 13시간(27일 오후 1시50분∼오후 8시, 28일 오전 7시∼오후 2시), 같은 해 7월 중 약 12시간(1일 오후 2시20분∼오후 8시, 2일 오전 6시30분∼오후 1시) 진행됐을 뿐이다. 절대적 시간이 충분치 않을 뿐 아니라 심야·새벽 시간대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것도 문제다. 정 사무처장은 “수리부엉이만 해도 야행성”이라며 “법정보호종 9종을 확인한 모니터링 또한 매번 새벽부터 진행됐다”고 말했다.

환경영향평가 업체도 할 말은 있다. 8년째 영업 중인 A업체 관계자는 “동식물 조사가 전수조사가 아니지 않냐. 결국 샘플 조사를 할 수밖에 없다”며 “3∼4일에 걸쳐 보고 야간조사까지 하더라도 거기 사는 분들이 계속 보는 것과 확실히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법정보호종인 맹꽁이만 해도 언제 나와서 번식을 할지 알 수가 없다. 번식기에만 소리를 내는데 우리가 하루 이틀 차이로 놓칠 수 있다”고도 했다.

◆경찰 수사까지… “평가비 정상화해야”

그러나 그 한계를 그대로 방치할 순 없는 문제다.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적정 대가 산정을 통해 이 ‘구멍’을 최대한 메울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러지 않으면 이 한계를 빌미로 한 의도적 거짓·부실이 확산하고 경찰 수사로까지 이어져 사회적 비용이 산더미처럼 불어나는 경우가 잦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경찰 수사 중인 거제 남부관광단지 조성사업 환경영향평가가 그런 사례다. 협의기관인 낙동강환경청은 올 5월4일 환경영향평가서 협의에서 법정보호종 조류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사업 예정지에서 불과 1㎞ 정도 떨어진 곳에 팔색조(멸종위기 2급) 번식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업체는 이 의견을 받아들여 5월11일 추가 조사했고 “사업지구 내 법정보호종 조류 울음소리, 개체, 서식 및 번식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재차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 지역 환경단체가 올해 이 지역에서 팔색조 둥지를 9개나 확인했다고 밝히면서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업체가 추가 조사 시점을 5월11일로 잡은 데 대해 팔색조 번식기를 피하려는 의도가 있다며 고발 조치도 했다. 노자산지키기시민행동 활동가인 원종태씨는 “논문을 보면 팔색조는 6∼7월 번식기에 가장 많이 운다고 한다”며 “업체 소속 전문가들이 그걸 모를 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업체는 이 같은 의혹을 부인하고 있는 만큼 결국 경찰 수사로 결론이 날 때까지 이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홍석환 부산대 교수(조경학)는 이런 의도적 거짓·부실 문제에 대해 “개발을 추진하는 사업자가 돈을 주고 업체에 맡기는 구조니 전문가라도 불성실하게 조사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이 지난 2022년 10월 7일 촬영한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 흰목물떼새.

환경단체가 그 대안으로 거론하는 게 공탁제다. 사업자는 비용만 대고 제3의 기관이 환경영향평가를 발주하도록 해 독립성을 제고하자는 것이다. 다만 환경부는 거짓·부실 발생 시 책임 소재 불분명 등 한계를 들어 공탁제 도입에 부정적이다.

환경영향평가 비용 정상화가 실현 가능한 대안으로 거론되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강은주 생태지평 연구기획실장은 “짧은 시간 내 한정된 인원으로 조사를 해야 하는 현재 환경영향평가의 한계를 완화하는 데 비용 정상화는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영준 한국환경연구원 부연구위원은 “2종 업체(재대행 업체) 계약금을 보면 동식물 조사의 경우 박사급 이상을 요구하는데 하루 인건비도 안 맞는 경우가 많다”며 “저가 대행 문제가 거짓·부실과 관련성이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