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번 중동발 지정학적 위험 증대로 국제유가 급등 등 세계 경제 및 국제금융시장 불확실성이 한층 높아질 우려가 있어 이에 대해 경계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다.”
9일 국제금융센터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슬람 무장정파 하마스 간 무력 충돌에 대해 “어떻게 전개될지 매우 유동적인 상황”이라면서 이같이 분석했다. 이·하마스 충돌은 ‘불확실성’을 싫어하는 금융시장 특성상 악재일 수밖에 없다. 관건은 이번 사태가 장기화하느냐다. 중동정세 불안정성 확대로 인한 고(高)유가 장기화는 정부의 국내 경제 ‘상저하고’(상반기 부진, 하반기 반등) 전망을 불투명하게 할 수 있다.
◆진정 국면이던 유가, 충돌에 ↑
◆“세계 경제 부담”…‘상저하고’ 불투명
시장 불안 심리로 자금은 급속히 안전자산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이날 금 현물 가격은 온스(1온스=31.1g)당 전 거래일 대비 19.67달러(1.07%) 오른 1852.68달러에 마감했다. 안전자산 선호심리 강화는 국내 금융시장에서 주가 하락,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전문가들은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이 더 악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그렇지 않아도 에너지 가격 상승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세계 경제는 매우 큰 부담을 안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오는 19일 기준금리 결정을 앞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로서는 변수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험, 급증하는 가계부채 등을 고려할 때 금리 인상을 쉽게 결정하긴 어렵지만, 거듭된 물가 상승압력은 한은의 고심을 깊게 한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내 경기가 워낙 안 좋으니까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을)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정부가 고수해온 ‘상저하고’ 경기전망의 달성 가능성은 더욱 어려워진다. 유가 급등이 유발한 고물가로 인한 내수 부진에 더해 역대급 세수 감소와 한·미 기준금리 차로 재정·통화정책의 여력마저 고갈된 상황이다. 수출 회복 동력으로 꼽혔던 중국 경제는 부동산 디폴트 위기를 거치며 오히려 중장기적인 위험 요인이 됐다. 그나마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 생산이 회복을 시작한 것이 희망적이다. 8월 반도체 생산은 13.4% 늘었고, 9월 반도체 수출은 올해 최저 수준의 감소율(-13.6%)을 기록했다.
이스라엘 현지에 있는 국내 기업들은 사태를 주시하며 대응에 나섰다. 현지에 진출한 삼성전자·LG전자 등은 현지 직원의 안전을 위해 재택근무로 전환하고 현지 상황을 수시로 체크하고 있다. 현대차그룹도 피해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리점 전시장이나 차량 파손 등은 아직 보고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충돌로 중동 지역 정세가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가운데, ‘2030 세계박람회’ 개최지를 두고 한국과 경쟁하는 사우디의 행보도 주목할 요소다. 사우디가 이번 무력 충돌에 어떤 입장을 밝히느냐에 따라 11월 예정된 개최지 선정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