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자가 운전대에서 손을 떼고 차량이 직접 주도해 운전을 하는 자율주행차를 올해 말부터 국내 고속도로에서 볼 수 있게 된다. 세계 최초로 시속 80㎞까지 달릴 수 있는 자율주행 레벨3 차량이다. 전 세계 완성차 업계에서 자율주행 레벨3 차량의 속도 경쟁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레벨3 자율주행차 무엇이 달라지나
13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기아의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V9 GT라인에 레벨3 기능을 넣어 이르면 연내 출시하는 것을 시작으로 레벨3 자율주행차를 차례로 내놓을 계획이다. EV9 GT라인은 최고 시속 80㎞로 주행할 수 있는 고속도로 주행보조(HDP)를 탑재할 예정이다. 전 세계 자율주행 레벨3 차량 중 최고 속도가 가장 높다.
앞서 독일의 메르세데스-벤츠의 S클래스와 일본 혼다의 레전드도 자율주행 레벨3 기술이 적용됐는데, 최고 속도는 시속 60㎞ 수준이다.
당초 최대 시속 60㎞로 주행이 가능한 HDP를 개발하려고 했던 기아는 계획을 수정했다. 고속도로나 자동차전용도로에서 시속 60㎞ 이하로 주행할 경우 도로 흐름에 방해가 되는 등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레벨3 자율주행은 진정한 자율주행의 시작 단계로 통한다.
미국자동차공학회(SAE)의 분류 기준에 따르면 자율주행 레벨2까지는 운전자가 주도하고 차량 시스템이 보조적인 역할을 하지만 레벨3부터 시스템이 운전을 주도하게 된다. 레벨5가 되면 모든 도로 상황에서 운전자가 전혀 개입하지 않는 완전 자율주행이 가능해진다.
오토파일럿,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 등 현재 보편적으로 상용화된 주행보조기능은 레벨3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해당 기능으로 차량은 고속도로 등에서 앞 차와의 간격을 유지하지만 운전자는 운전대에서 손을 뗄 수 없다.
운전자가 레벨3 차량을 운전하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고속도로 주행 중 운전대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달릴 수 있다. 다만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운전자가 즉시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
운전대에서 자유로워진 운전자는 차량 내에서 운전 외에 다른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정부의 레벨3 자율주행차 안전기준에 따르면 자율주행시스템을 사용할 때 운전자는 차량 내 영상장치를 이용해 영화·게임을 즐길 수 있다. 자율주행시스템이 해제되면 영상장치는 자동으로 종료된다.
또한 자율주행 중 운전대를 잡은 상태에서 가속이나 감속 페달을 밟을 때, 고속도로 출구 등 운전자 개입이 필요할 때 자율주행 기능은 해제된다. 레벨3 차량은 평상시 차량이 알아서 운전하고, 이와 관련한 책임은 자동차 제조사가 진다.
◆전 세계 자율주행 경쟁 본격화
국내에 최고 속도 80㎞의 레벨3 자율주행차가 판매되면 본격적으로 자율주행 시장이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해외 완성차 업체들도 자율주행 레벨3를 구현하기 위한 연구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독일에서는 벤츠에 이어 BMW가 최근 당국으로부터 독일 내 자율주행 레벨3 운행을 승인받았다.
니콜라이 마르틴 BMW 자율주행부문장은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독일 한델스블라트에 “연내에 레벨3 자율주행시스템이 BMW7 시리즈에 도입될 것”이라며 “고객은 운전대에서 손을 떼고, 주의를 완전히 돌려 동영상을 보거나 이메일에 답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레벨3 수준의 자율주행이 보편화하면 속도 경쟁도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벤츠와 BMW 모두 현재로서는 아우토반에서 차량이 밀릴 경우 기상 상태가 좋다는 전제로 시속 60㎞까지만 레벨3 자율주행을 허가받았다. 벤츠는 내년 말까지 레벨3 자율주행 속도를 시속 90㎞까지 높이는 데 이어 장기적으로는 시속 13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BMW도 비슷한 목표를 갖고 있다.
고속도로에 이어 도심에서 자율주행 레벨3 차량을 언제 운전할 수 있게 될지도 관심사다. 완성차 기업들은 도심에서 택시나 셔틀버스 등 특수한 목적이 아닌 일반 소비자 대상의 자율주행 레벨 3단계 시도에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고속도로와 달리 도심은 자동차 이외에 사람, 오토바이 등이 수시로 오가고 신호가 없는 교차로, 설치물 등 다양한 환경에 노출돼 있다. 돌발상황이 많아 그만큼 자율주행을 위해 고려해야 할 요소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고속도로에서는 시속 80㎞도 느린 편인데 더 높은 속도로 자율주행을 가능하게 하려면 안전성을 보장하기 위해 기술의 완성도를 세밀하게 높여나가야 한다”며 “도심에서의 자율주행은 보행자의 방향과 예상 움직임, 다른 차량의 신호 위반, 차량을 비집고 들어오는 오토바이 등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